자체 대선후보 양성 시급
"대통령 후보를 생산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유력 대권 주자의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다 대구경북 정치권이 의원내각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절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최근 만난 지역 출신 원로 정치인이 대구경북(TK) 보수 정치의 무력함을 걱정하면서 한 말이다. 무엇보다 TK 출신 대통령이 10년 가까이 집권하는 동안 당선권에 근접한 지역의 차기 대선 주자를 양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
'의원내각제' 언급도 뼈아픈 대목이다. 의원내각제는 선거를 통해 획득한 표만큼 정치권력을 나눠 가지는 구조다.
다만 우리 정치권에선 대통령 선거에서 최다 득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진영에서 수세적으로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최다 득표가 가능하다고 믿는 세력은 득표율과 상관없이 당선되면 모든 권력을 쥘 수 있는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충청권을 대표했던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의원내각제 도입을 고리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제휴해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지만 끝내 '팽'당했고 부산경남(PK)과 연대해 두 번의 대선을 승리한 '민주당'의 텃밭 호남에서도 최근에는 '자력으로 대선은 어렵다'는 자조 속에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제도적으로 '우리 몫'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TK 정치가 충청과 호남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미 있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수도권 국회의원은 금메달 국회의원,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 국회의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왕성한 의정 활동과 정치 행보를 통해 거물급으로 성장하기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만 보며 자리 보전에 연연했던 보수 정당 텃밭 국회의원들의 구태를 꼬집은 것이다.
지역 정치권에선 반복된 공천 농단이 지역 정치권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보수당 내 대권 경쟁 과정에서 지역 출신 유력 정치인이 자신의 세를 불리는 수단으로 공천을 악용하면서 지역 정치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또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특유의 지역 정서와 성장 무대인 수도권 민심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행보가 지역 출신 정치인의 성장을 더디게 했다는 비판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구에서 통하는 정치인이 여의도에서 주목받고 여의도에서 성장하는 정치인은 차기 총선을 걱정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선순환 구조가 아직 TK에선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TK 정치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지역 출신이 아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칼자루를 쥐는 분위기다. TK 정치가 황 대표의 대선 도전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당면한 선거에 자력으로 후보자를 내지 못하거나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한 정치세력의 미래는 자명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TK 정치의 절박한 현실을 고려하면 '죽어야 살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밭을 완전히 갈아엎고 새로 씨를 뿌리자는 취지다.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다. 하지만 싹이 자라는 동안에도 대구경북은 '정치'가 필요하다.
TK를 텃밭 삼은 정치인들이 답답하니 불모지에 '민주당' 깃발을 꽂은 김부겸 의원과 5선에 도전하는 유승민 의원에게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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