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욕망의 바벨탑, 아파트

입력 2019-12-01 15:0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시인, 예술인까지 서너 명 모이면 아파트값 얘기를 한다. 누구는 아파트 한 채를 팔아 몇 년 만에 3억원을 벌었다고 자랑한다. 서민들이 평생 저축해도 모으기 힘든 돈이다. 아무리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지만…."

시를 쓰는 친구의 푸념이다. 그는 아파트는 욕망의 화신이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똘똘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 로또가 따로 없다. 부동산 정책은 헛발질만 한다. 정책이 일관성 없고, 꼼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값은 갈수록 오른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신기루다.

대구에서 입주 1년 미만인 새 아파트(올해 3분기 기준)가 분양가보다 평균 1억원 이상 오른 가격에 매매됐다. 부동산정보서비스업체 직방에 따르면 3분기(7~9월) 대구의 입주 1년 미만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분양가보다 1억1천811만원 상승했다. 이 상승가는 서울(3억7천480만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다. 분양가도 크게 오르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10월 기준 대구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1천454만원. 1년 전(1천254만원)보다 15.9% 올랐다.

아파트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한국은행 자료는 이를 입증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7~2016년 아파트 수익률은 59.5%로 정기예금(41.0%), 주식(41.3%)보다 훨씬 높았다. 또 부자일수록 부동산 투자 비중이 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10억원 이상 부자들의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53.3%이다. 특히 30억~50억원대의 부자는 그 비중(57.4%)이 더 높다.

아파트는 삶을 무섭게 바꾸고 있다. 아파트는 장례식장은 물론 결혼식장까지 거부한다. 주민들은 자녀 교육, 환경 훼손이나 교통 체증 등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지만, 더 큰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장애 학생들이 공부하는 특수학교 설립도 '결사 반대' 한다. 장애 학생 부모들이 눈물로 호소해도 외면한다. 집값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

아파트는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도 사는 아파트에 따라 친구를 구별짓는다. '휴거'(휴먼시아 거지의 준말), '임대충'(임대아파트 사람을 비하하는 말), '대출거지'(대출 받아 집 한 채 마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 등 주거지(형태)를 차별하는 조어들이 생각 없이 쓰이고 있다.

가진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시세 차익을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고 하면 화를 낸다.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반발한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노후를 보장받고, 자식에게 물려준다. 부의 대물림과, 빈부 격차의 골은 깊어간다.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되면 부자들은 돈을 벌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가난한 원주민과 세입자들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서울특별시 행복동 난장이 가족의 소외된 삶(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에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 토지공개념 등을 주장하면 좌파나 사회주의자로 몰린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를 잡을 자신이 있다고 공언했다. 아파트에 대한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정책이 확고부동하지 않는 한, 대통령의 공언은 공허하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