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프로타고라스/플라톤 지음/박종현 역주/서광사/2010년

입력 2019-11-30 06:30:00

훌륭함은 가르칠 수 없다

누가 독자에게 같은 주제를 여러 측면에서 집요하게 묻는다면, 독자는 몇 차례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예닐곱 번 답변할 수준이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에게 맞서 자기주장을 펼친 사람이 있다. 마지막엔 말문이 막혔지만, 상대가 '질문 왕'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훌륭하게 방어한 셈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 이야기다.

'프로타고라스'는 플라톤이 40세 이전에 쓴, 초기 대화편 중 한 권이다. 책은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훌륭함(aretē, 아레테)'에 관한 논쟁을 기록했다. 두 사람이 논쟁한 시기는 기원전 433~432년경으로 아테네의 전성기이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소크라테스의 나이 37~38세 때로 추정한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소피스트(sophist)는 당시 헬라스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로 몰려든다. 이들은 아테네의 부호 칼리아스의 집에 유숙하는데, 프로타고라스도 여기에 머물러 있다. 프로타고라스에게 배우겠다는 히포크라테스를 데리고 소크라테스가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대화는 이루어진다.

김준현 작
김준현 작 '백양사의 가을'

책은 '훌륭함은 가르칠 수 있는가?'라는 논제를 중심에 놓고 훌륭함과 그 부분들의 관계를 살피고, 훌륭함과 관련된 시모니데스의 시를 논의한다. 소크라테스가 주로 묻고 프로타고라스가 대답하면서 훌륭함과 관련된 것들이 어떠하며, 훌륭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고찰한다. 프로타고라스는 '훌륭함은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을 논증하고, 소크라테스는 '훌륭함은 가르칠 수 없다.'는 논지로 질문하며 논박한다. 두 사람은 때로는 같은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맞서면서 논증에 온 열성을 다한다.

소크라테스는 평소 소피스트를 탐탁지 않게 여긴 듯하다. 소피스트의 스승 격인 프로타고라스를 지혜로운 사람은커녕 '언변에 능란하도록 만드는 일에 통달한 사람'으로 본다. 이런 사람에게 사례를 주고 배우기 위해 히포크라테스가 자기를 찾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소피스트의 본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수십 번 묻는다.

논쟁 첫 부분에서는 프로타고라스가 설화(mythos)와 논변으로 의기양양하게 논증을 펼치지만, '산파술의 제왕' 소크라테스가 질문할수록 그는 궁지에 몰린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짧게 동의 여부를 말하거나, 정색하거나, 거칠어진다. 심지어 대답하는 내용과 관련해서 싸울 태세로 보이기도 한다. 더 대답하지 못하는 프로타고라스는 침묵한다. "그대 스스로 마무리하시오." 프로타고라스의 항복 선언이다. 소크라테스 쪽으로 승기가 기울지만, 독자도 알다시피 이 대화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논쟁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갔을까? 그가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라서. 히포크라테스에게 소피스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둘 다 아니다. 진리에 다가가고자 함이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심도 있게 논의를 펼친 두 사람은 훌륭하다. '프로타고라스'는 독자가 '훌륭한 상태'에 이르도록 사유할 시간을 준다. 그렇다. '훌륭함'을 가르칠 수는 없고, 터득할 수는 있다.

김준현 학이사독서아카데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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