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랑을 싸랑한 거야/ 정미 지음/ 특별한서재 펴냄

입력 2019-11-16 06:30:00

아빠가 남기고 간 빚 갚으려 고군분투, 노래주점서 돈벌며 힘겹게 살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청소년 자매 얘기

사랑을 싸랑한 거야/ 정미 지음/ 특별한서재 펴냄
사랑을 싸랑한 거야/ 정미 지음/ 특별한서재 펴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스라엘 다윗 왕을 위한 반지에 새길 문구로 솔로몬 왕자가 제안했다는 문장이다.

어른들에게 청소년의 아픔과 고민은 '나도 한 번쯤 겪었던' 하찮은 걱정일 수 있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 처음 부닥친 청소년들에겐 인생 최대의 고통을 헤쳐나갈 현실적 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장은 그래서 누군가에겐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힘을 불러올 수 있다.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 모두가 삶의 해답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고통과 근심을 맞닥뜨리며 차근차근 배우고 성장한다. 그런 성장 과정에 있는 청소년과, 청소년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해야 할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빚더미에 앉은 청소년 자매, 둘에게 사랑으로 찾아온 한 남자

어지혜, 어지원 자매에게 갑자기 큰 위기가 닥친다. 사업에 실패한 아빠가 갑자기 종적을 감췄고,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 쳐들어와 채무 상환을 독촉한다. 자매와 엄마는 이들을 피해 할아버지가 살던 동네로 이사한다. 빚을 갚으려 할아버지는 힘든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 결혼 전 직장생활 경험이 없던 엄마는 새벽까지 식당일을 한다.

얼마 후 두물머리에 사진을 찍으려 산책갔던 '지원'은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긴 '찬혁'에게 첫눈에 반한다. 맘 붙일 곳 없던 지원은 찬혁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마음을 키운다. 그러면서 자기보다 예쁜 언니 '지혜'와 찬혁이 만나면 그를 뺏길까 노심초사하며 그의 존재를 숨긴다.

한편, 자매는 빚쟁이에게 사는 곳을 들킬까봐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 이들은 짧은 시간 내 빚을 갚으려면 로또 1등 당첨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돈 없는 미성년자 신분으로는 로또복권을 사는 것조차 어렵자 낙심한다. 그런 가운데 언니 지혜를 눈여겨 보던 사채업자 '강철'이 "로또 복권을 사 주겠다"며 노래주점 아르바이트를 제안, 자매가 모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번 돈을 로또 구입에 몽땅 썼지만 당첨은 쉽지 않았다. 어느날, 자매는 노래주점에 들어갔다가 찬혁이 지병인 간질로 심하게 발작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놀라 어쩔 줄 몰랐던 지원과 달리 지혜는 침착하고 의연하게 119에 신고해 구급요청을 한다. 이후 지혜는 찬혁을 좋아하게 되고, 지원은 언니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자신의 사랑이 정말 사랑이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소설보다 더 독한 현실, '삶을 살아갈 이유' 보여줘

"학교, 학원, 집에서 귀가 따갑도록 공부, 공부, 공부…. 대핛에 들어가면 또 취업 공부. 계속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이에요? 드라마처럼 달달한 사랑 얘기를 써주세요. 책 읽는 순간만이라도 현실을 잊고 딴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게요.

'살아남기'에도 바쁜 요즘 청소년들의 고민을 접하며, 작가는 청소년이 처한 현실을 더 이상 '어른'으로서 모른척 하거나 외면하고 싶지 않아 천신만고 끝에 이 소설을 썼다.

'사랑을 싸랑한 거야'는 그저 소설로만 만든 허구가 아니다. 사회가 외면하고 어른이 눈 돌려 온, 소설보다 더 '독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지은이는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아이들 이야기를 어렵게 끄집어냈다.

힘든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이런 질문에 저자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태풍처럼, 이 또한 지나가 버린단다"고 얼버무렸을 뿐, 명쾌한 해답을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이에 '삶을 계속 살아갈 이유'와 '사랑의 힘'을 주제로 소설을 풀어냈다.

지은이는 "어느 구석진 자리에 앉아 웅크린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달콤함을 맛보기도 전에, 세상의 쓴맛을 먼저 알아버린 당신은 어쩌면 남들보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패막이를 하나 더 얻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22쪽, 1만2천원.

▷정미

경기도 안양에서 자라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200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2009년 아테나아동문학상 대상 수상으로 작가가 됐다. 작가는 되는 게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학생들과 신나게 놀고 있다. 2013년 경기도문학상 아동소설 부문, 2015년 양평예술대상, 2018년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등을 받았다. 시집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장편동화 '이대로도 괜찮아', 청소년 테마 소설집 '마음먹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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