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승객에 성폭언 택시기사…녹취했지만 "처벌 못 해"

입력 2019-11-13 16:27:34 수정 2019-11-14 11:40:30

현행 형법 등 '신체적 접촉' 규정…경찰 "발언 만으론 고발 어렵다"
피해 여대생 승객 신고접수 안돼…여성단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해당 녹취는 피해여성 A씨가 "나와 같은 피해자가 재발해서는 안된다"면서 전체 공개를 요청해 와 문제의 발언을 한 택시기사 목소리를 변조하고 일부 자극적 내용만을 삭제한 채 공개합니다. 이주형 기자coolee@imaeil.com
1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앞에서 열린
1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앞에서 열린 '성폭력 예방 캠페인'에서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대구 팔공클럽 회원들이 '성폭력 NO', '언어폭력 NO', '성차별 NO'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캠페인을 주최한 팔공클럽(회장 손영해)은 '성폭력 없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라는 취지 아래 매년 '성폭력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최근 대구의 한 택시기사가 여성 손님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성희롱 발언을 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피해 여성은 경찰에 신고접수조차 하지 못했다.

녹취 증거까지 확보했지만, 현행법상 폭언만 갖고는 성희롱으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이유 탓에 형사고발 등 법적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여대생 A(23) 씨는 지난 9일 오후 1시쯤 두류동에서 택시를 탔다가 내리기 직전 택시기사로부터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참다못한 A씨는 마지막 1분 40초가량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녹음했다.

운행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택시기사 B(61) 씨는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A씨에게 남성과 여성의 신체 부위를 지칭하며 입에 담기 민망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얼굴 예쁜 거 다 소용없다. 머리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서 성적 폭언을 이어갔다.

11일 만난 A씨는 대학 졸업반으로 시험과 취업 준비에 전념해야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당시 뇌 정지가 온 것처럼 멍하다 갑자기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왔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당시 길에 행인도 없어서 말하는 도중에 차 문을 열고 내릴 엄두가 안 났다"고 털어놨다.

A씨는 가족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집 근처 파출소에 신고했지만,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현행법상 폭언에 의한 성희롱 처벌 규정이 없는데다, 당시 택시 안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모욕죄 적용대상도 아니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라고 했다.

A씨는 "증거가 뚜렷한데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데 다시 충격을 받았다"며 "이 일을 겪은 후 길에 택시만 보여도 소름끼칠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10대 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택시기사(매일신문 2018년 6월 20일 자 10면)의 경우 피해자가 미성년자여서 아동복지법 위반을 적용해 검찰이 기소했다.

현행 형법과 성폭력특례법상 강간이나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은 처벌할 수 있지만, 성희롱은 별도의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신체적 접촉이 없는 성희롱은 처벌이 불가능한 셈이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2005년 남녀차별금지법 폐지 이전에는 발언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성희롱 발언 외에 일반인이 당한 피해는 국민권익위 진정 말고는 대응 방법이 거의 없다"며 "현행법상 성인이 당한 언어적 성희롱은 처벌이 모호한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만큼 하루빨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주현 변호사(형사법 박사)도 "성폭언으로는 추행 및 강간죄가 적용되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피해자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무형적 방법에 의한 상해죄가 될 수 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할 것을 조언했다.

한편, B씨가 일하는 법인택시회사는 12일 녹취록을 확인한 후 B씨를 해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B씨가 뉘우치고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받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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