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대구 인류의 원류를 찾아

입력 2019-11-09 06: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2006년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아파트 부지 일대에서 1만3천 184점에 이르는 다량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대구지역 인류 역사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앞당겨주었다.

월성동 구석기 유물 발굴 중 특이한 점은 구석기 제작지의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 몸돌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던 망치돌, 몸돌로부터 떼어 낸 격지(몸돌에서 산출된 가공 돌), 긁개, 새기개, 찌르개, 흑요석 등 다양하고도 많은 석기들이 발굴됐다. 그리고 받침돌(臺石)을 비롯해 모룻돌도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화산분출 때 형성되는 유리질 화산암인 흑요석은 최근 구성광물 분석결과 백두산 기원으로 밝혀져 대구 최초 인류 기원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동 중에 다른 지역 구석기 인류와의 물물교환으로 흑요석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장소 관련성을 입증하는 데 있어 흑요석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수단이다.

후기 구석기시대로 입증된 달서구 월성동 유적과 유물은 약 2만여 년 전의 것으로, 2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에 백두산 일대를 출발하여 대구로 구석기인류가 이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백두산 일대에서 살다가 이동해 온 대구 최초 인류는 또 다른 외부 이주 세력과의 혼혈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언론에 공개된 신석기시대 인류의 유전체(게놈) 비교분석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한민족의 기원이 알타이산맥에서 몽골, 중국 대륙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기존의 북방계설(언어, 외모 등 유사성) 보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 올라 온 남방계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 과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즉, 우리 민족의 유전체는 고립된 현대 베트남, 타이완 원주민 유전체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북동쪽 프리모레 지방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인류 두개골 유전체에 결합시켰을 때 가장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고구려, 동부여, 옥저 영토였던 프리모레 지방의 동굴(악마의 문 동굴, Devil's Gate Cave)에서 발굴된 약 7천 700년 전 신석기시대의 40대 여성, 20대 여성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체 분석에서 드러난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현재의 한국인과 같은 갈색의 눈, 앞니가 삽처럼 생긴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게 나는 유전자, 마른 귓밥 등의 유전자 특성이 현대 동아시아 유전체 특성과 유사하다고 한다.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굴된 유전체는 주변에 거주하는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도 한국인의 특성과 일치해 모계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하면, 한민족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혼혈이며, 유전체 특성에서 볼 때 남방계 농경민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한민족 기원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월성동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을 고려해 볼 때, 대구 최초의 인류는 빙하기의 추운 날씨를 피해 백두산 일대로부터 이주해온 구석기 인류가 대구 최초의 토착민이었다. 한편 고조선 원조 인류는 3〜4만 년 전과 약 1만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극동으로 각각 이주해간 수렵채취인들과 농경인들 간 혼혈로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고조선의 멸망으로 남하하던 유민들이 대구 최초 토착민과 혼혈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될 거 같다. 현재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 변에 설치되어 있는 '대구 2만년 역사가 잠든 곳' 조형물(길이 20m, 높이 6m)은 이곳이 대구 최초의 인류 거주지였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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