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외국어로 통역하거나 혹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특정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통역하는 것은 단순히 의미가 비슷한 낱말을 대체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라도 그 안에는 소리나 문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정신도 함께 녹아 있다.
얼마 전, 우리 대학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국제행사이다 보니 당연히 발표 및 토론을 위한 통역요원이 필요하였다. 지인을 통해 우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중국 출신의 결혼이민여성을 소개받았는데, 통역 경험이 제법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이 여성을 신뢰하게 된 것은 바로 통역에 대한 그녀의 자신감과 한국에 거주한 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전의 첫 발표자부터 통역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대만 원로학자의 발표 내용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였고, 대회장은 곧바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매우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결혼이민여성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은 통역을 잘 하는 편이나,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학술대회에서는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우리 대학 주관으로 한일 교육대학 총장포럼을 개최했을 때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3일 동안의 일정으로 진행된 행사에는 한국과 일본의 모든 교육대학 총장들과 교육관계자들이 모여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여 어떻게 교원을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열띤 토론이 있었고, 이 행사에도 통역요원이 필요하였다.
그 당시에도 필자는 지인을 통해 일본 출신의 결혼이민여성을 소개받았다. 이 분은 한국에서 10년을 넘게 살았고 또 한국어를 아주 잘 구사하였다. 그런데 첫 행사인 환영만찬회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였다. 단순히 행사 순서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질의나 응답 혹은 즉석에서 진행되는 인사말 등은 제대로 통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통역요원은 행사를 마칠 때까지 전체 일정을 소화하였다.
물론 모든 행사가 그러하듯이, 많은 분들을 초청해 놓은 상태에서 행사 진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 기회에도 행사에 필요한 통역요원으로 결혼이민여성을 추천하고 싶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노력과 경험이 조금씩 축적된다면 충분히 전문 통역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통번역학자인 르드레르(Marianne Lederer)도 지적했듯이, 통역은 문화적 요소나 전문용어의 무지 혹은 표현능력의 미숙함에서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록 국제학술대회 중 학회장이 직접 발표자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혹은 일본의 한 교육대학에서 통역자로 참석한 사람이 우리 행사의 통역을 지원해 주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다음 국제행사에서도 결혼이민여성에게 동시통역을 부탁할 것이다. 분명 이들에게는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말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