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46> 주판

입력 2019-11-04 18:06:00

"368원이요, 473원이요, 389원이면 ". 선생님이 문제를 내면 여기저기서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토독토독' 합창을 한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입학시험에 주산 과목이 있었다. 저마다 주판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문제지에는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문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적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조그만 손가락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며 판셈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중학교에 입학하자 상업이라는 과목도 있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서 직장인이 되었다. 숫자를 많이 사용하는 부서에서 일하였고, 늘 계산을 하는 게 맡은 업무였다. 옆자리의 동료 가운데 주판을 잘 놓는 직원이 있었다. 덧셈이나 뺄셈은 물론 곱하고 나누는 셈까지 척척 해냈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복잡한 곱셈이나 나눗셈을 얼마나 잘하는지 부러웠다. 심지어 소수점 이하의 계산까지도 막히지 않고 해냈다. 때로는 손을 빌리기도 하였지만.

문명의 이기가 수고를 덜어주었다. 손잡이를 앞뒤로 돌리며 계산하는 기계식 계산기가 나왔다. 돌릴 때마다 '땡 땡' 하는 소리가 났다.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참으로 신기했다. 열심히 배워서 업무에 이용하였다. 그런 세월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전자계산기라는 게 등장하였다. 성능이 좋을 뿐 아니라 크기며 모양도 다양하였다.

그러나 사용하다 보면 틀릴 때가 있었다. 한 번은 동료가 해놓은 계산이 틀려서 나무랐다. 그랬더니 "계산기로 했는데요" 하면서 볼멘소리를 하였다. 그래서 "이 사람아, 계산기를 만지는 손가락에 잘못이 있었겠지" 하였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요즘에 비유하자면 컴퓨터는 못하는 일이 없다. 고성능의 기계 설비를 제작하고, 인공위성을 원격 조정하는 일도 척척 해낸다. 하지만 그것을 조작하는 것은 사람의 손가락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주판이 널리 쓰이지 않았다. 특히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판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전래되어 오던 산목(算木)에 의한 계산법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주판이 보급되었는데,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주판보급회라는 조직을 만들고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윗알이 1개, 아래알이 4개인 주판이 사용된 것은 1932년부터이다

주판은 오랫동안 상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광복이 되자 상업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주산의 급수를 정하여 문교부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검정을 실시해 왔다. 전자계산기가 널리 보급되는 바람에 비록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도 속도라는 면에서 뒤지지 않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숙련된 전문 기능사는 수많은 현대의 기계식 계산기와 경쟁이 가능하다.

해마다 대구엑스코에서 '전국 주산 수리영재 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학생들의 두뇌계발과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금상까지는 메달과 상장을, 그 이상의 수상자에게는 트로피를 주었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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