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상태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소위 역지사지이다. 먼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는 타인의 입장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기를 성찰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대되어 나는 더 넓은 자아를 가지게 된다. 반성과 역지사지는 자아의 자기 변화, 자기 혁신의 방법이다.
반성은 반사나 반향이기도 하다. 빛과 음향이 되돌아와서 나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과 같다. 자기 발견, 자기 객관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이 듣기 거북한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을 내밀며 '반사'라고 한다. 말한 이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것이다. '너에게 똑같이 적용해 봐. 그거 다 너 자신의 일로 생각해 봐.'
반성은 심사숙고이다. 우리는 외출 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앞뒤로 돌아서며 몇 번이나 비추어 본다. 우리의 생각의 모양도 거울에 반사시켜 몇 번을 꼼꼼히 점검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판단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여러 번 남의 입장에서 요모조모를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반성은 지적, 감정적 통제 능력을 발전시킨다. 지적, 정서적 지능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우리의 화내는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자. 이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분노의 결과다. 수십 년간 쌓여온 분노가 이런저런 이유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다만 표현 방식의 문제이다. 개인의 마음속에 계속 분노가 쌓인다면 그가 어떤 생각, 느낌, 행동을 하게 될지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관계 속에 분노가 계속 쌓인다면 어떤 관계가 될지 불 보듯 뻔하다. 왕따, 학교 폭력, 묻지마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대의명분과 합리화는 달라도 의식과 무의식 속에 담긴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분노의 표출에 너무 정직하다. 모두가 화난 얼굴이다. 누구든 분노가 없을 수 없으나 통제해야 하는 것은 각 인격체의 책임이고 과제다. 집단적으로 통제의 고삐를 거의 놓아버린 형국이다.
류마티스관절염은 체내 면역체계의 오류라고 한다. 자신의 몸을 외부 물질로 오인하여 공격하므로 관절 내에 염증이 발생하고 지속되어 점차 관절이 파괴되는 증상이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류마티스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이웃을 예의를 갖추어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파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매우 심각하다. 결사반대 구호를 적은 머리띠를 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작은 일에 결사반대를 외치며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면, 더 작은 일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협박이 일상화되어 있다.
마음의 토양 오염인 분노, 공격성, 공포를 씻어내자. 그 자리에 반성, 역지사지, 공감, 동정, 예의, 배려를 채우자. 각종 언론, 각종 단체, 공직자들에게 분노총량제를 적용하면 어떨까? 기준 이상의 분노 표현이나 분노 유발을 막으면 어떨까? 빅데이터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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