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식
금요일 밤, 불금이라며 친구, 연인과의 약속이 없는 분들은 이제 TV 앞에 앉아 조용히 귀를 열어 놓는다. 거기 이제 고막을 간지럽히는 힐링의 시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고막힐링의 시간을 만든 JTBC '비긴어게인'.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 음악 프로그램에 푹 빠뜨렸을까.
◆영화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된 음악 프로그램
JTBC '비긴어게인'은 동명의 영화로 화제가 됐던 존 카니 감독의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됐을 거라 여겨진다. 물론 '국내의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버스킹'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성과 차별성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의 기획대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거리 밴드를 결성하고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녹음하는 그 과정은 충분히 이 프로그램에 영감을 줬을 게다.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와 지나는 자동차 소리 같은 현장의 소리들이 녹음과정에 들어가면서 훨씬 더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음악의 질감은 영화 속에서나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모두 음악이 달리 들리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간 우리가 무대 위에서만 들어왔던 음악에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일상성과 즉흥성이 더해진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가 올려다보는 무대 위에 존재하던 어떤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비긴어게인3'에서 이탈리아 피에트라 다리에서 피아노를 놓고 연주하는 한 외국인 버스커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즉흥으로 하는 연주에 헨리가 바이올린을 얹는 장면이나, 이태리 아말피 성안드레아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주변에 앉아 있던 아말피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 같은 건 무대에서 우리가 발견하기 쉽지 않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다.
누군가 그 공간에서 노래나 연주를 시작했고, 그것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참여하게 만든다. 또 헨리가 가르다 호수를 배경으로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 한 이태리 아이가 즉석에서 브레이크댄스를 하겠다고 나서 헨리의 연주와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 건 맞춘다고 나올 수 있는 음악의 풍경이 아니다. 무작정 악기 들고 현장으로 나섰기에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우연의 순간일 뿐.
◆여행과 음악의 만남, 버스킹 예능의 매력
여행이 갖는 우연적 요소는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이 여행을 소재로 했던 중요한 이유였다. 이제 음악 프로그램 역시 여행이란 소재를 더해 우연적인 음악의 탄생을 끄집어내고 있다. 2017년 시작한 '비긴어게인'은 처음에는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노홍철이 함께 하는 음악여행처럼 꾸려졌다.
노홍철 같은 비음악인이 참여했던 건, 이 음악 예능이 자칫 너무 음악적인 것으로만 흐르지 않고 예능적인 맛 또한 더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실제로 그 첫 시즌에는 윤도현과 유희열, 노홍철이 게임 같은 걸로 만들어가는 예능적 케미의 재미가 압도적인 음악의 맛과 어우러졌다.
하지만 2018년 돌아온 '비긴어게인2'는 예능적인 강박을 벗어내고 김윤아, 이선규, 윤건, 로이킴이, 그리고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이 각각 팀을 꾸려 온전히 특정 외국의 어느 지역에서 버스킹을 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새로이 시작한 '비긴어게인3'는 이전 시즌에서 호평 받았던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에 임헌일과 김필을 더해 막강한 라인업을 꾸렸고, 이적, 태연, 폴킴, 적재, 김현우가 또 한 팀을 꾸려 또 다른 색깔의 버스킹을 보여줬다. 오롯이 음악 버스킹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 '비긴어게인'을 알게 됐고, 실제로 금요일 밤 한 주의 피로를 이 프로그램을 보며 풀어내는 새로운 관전 문화까지 생겨났다.
왜 국내에서는 버스킹을 하지 않느냐는 대중들의 요구에 이번 시즌3에서는 떠나기 전 포장마차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보다 해외가 더 큰 감흥을 주는 건, 그 곳의 이국적인 풍광과 문화 속에서 우리네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음악으로 하나 되는 그 순간이 주는 공감의 쾌감은 이른바 버스킹 예능이 끄집어낸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
◆경쟁보다는 하모니를 더 원하게 된 대중들
사실 한 동안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오디션이었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화려한 성공의 막을 올렸고, 그 후로 지상파에서도 SBS 'K팝스타' 같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101'은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배출된 워너원이나 아이오아이 같은 아이돌 그룹들은 단기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어 모으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로듀스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다.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냉담한 반응은 단지 조작 논란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오디션이 갖는 경쟁적인 분위기에 대중들도 지쳤던 것이 진짜 원인이다. 논란이 생기기 이전부터 준비했던 Mnet이 새로 내놓은 'World Klass'가 스무 명의 연습생을 모아놓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강조하고 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하게 된 건 이런 대중들의 달라진 정서 때문이다.

JTBC는 일찍이 경쟁 오디션을 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경쟁보다는 하모니를 추구하는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팬텀싱어'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크로스 오버 남성 중창단을 꾸리고 대결하는 오디션으로 만들어졌지만, 대결보다는 서로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했다. 계속 팀원이 바뀌는 시스템은 지금의 경쟁자가 훗날의 동료가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오디션이 가능했던 것.
여러 악기 연주자와 아티스트들이 모여 밴드를 구성한다는 '슈퍼밴드'도 같은 기조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은 대결하지 않았다. 함께 다양한 악기 연주와 목소리들을 맞춰보고 거기서 나오는 독특한 음악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줬을 뿐이다.
'비긴어게인'은 바로 이런 음악 프로그램의 새 경향인, 경쟁이 아닌 하모니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한 힐링'까지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음악은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본질적인 소재지만, 그걸 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한때는 쇼였고, 한때는 순위 프로그램이었으며 때론 오디션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다양성과 공감과 힐링이 그것이다. 금요일 밤을 기대하게 하는 고막 힐링의 시간. '비긴어게인'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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