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시는 자연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것이므로 시인은 결국 받아쓰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글쓰기 대부분은 받아쓰기라고 할 수 있지요. 받아쓰기를 잘 하려면 시각보다 청각을 앞세워야 합니다. 눈이 아무리 밝아도 귀 담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항해 중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달려 있다'고 했어요. 여기서 '눈'이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사실 귀는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해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큰소리라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꽃과 바람의 말이 들려옵니다. 이건 비밀이라며 구름과 바위가 귓속말을 합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시끄럽게 수다를 떱니다. 그러나 걸어오는 말을 엉뚱하게 알아들을 때도 있습니다. 벌레의 웃음을 울음으로 듣고, 새의 울음을 웃음으로 듣기도 합니다. 착각은 자유니까 용서할 수 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지렁이의 머리를 꼬리라고 하고 문어의 몸통을 머리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즐겁다며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요.
받아쓰는 것 보다 받아쓰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음식물이 쌓이고 쌓인 냉장고의 인내심도 받아쓰지 못했고, 뒹구는 돌의 잠꼬대도 받아 적지 못했고, 나팔 부는 나팔꽃의 노래도 받아쓰지 못한 무능한 시인입니다. 반면, 물고기는 바다의 말을 받아쓰고, 풀들은 바람의 말을 받아쓰고, 지렁이는 빗물의 말을 받아씁니다. 온 몸으로 받아쓰는 시인들이지요. 언젠가는 이런 말들을 다 받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시인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해도 그것이 상식의 선'을 넘지 못한다면서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라고 하소연 합니다. 또한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고 하였지요. 뻔히 보이는 말이 아닌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 같은 말을 모과에게 배워 받아쓰는 것이야말로 모든 시인의 소망일 것입니다.
꽃이 꽃향기를 받아 적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씨앗을 맺기 위해 꿀을 나누어 주는 꽃의 마음이며, 꽃가루를 얻기 위한 벌들의 수고로운 받아쓰기를요. 교과서적 지식만 받아쓰라고 강요하는 우리의 사회와는 다른 모습이지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받아 써야 하는 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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