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승객 질문에 답변 못한 자신 부끄러워 역사공부 시작
경상권 고분 80% 이상 답사…최근엔 '신라왕릉 일람표' 정리해 배포
경주시내 몇몇 공공기관 민원실 책꽂이엔 신라 왕의 주요 정보를 표로 정리한 1장 짜리 인쇄물이 놓여 있다. A4 크기 코팅 책받침을 닮았다. 신라 1대 왕인 혁거세부터 56대 경순왕까지 각 왕의 왕호와 이름, 성씨, 재위기간, 삼국사기·삼국유사 속 장지 기록, 현재 왕릉 위치 등을 담고 있다.
삼국을 통일했고 "화장한 뼛가루를 동해에 뿌려라. 바다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에 대해선 이렇게 정리했다. '30대/문무/법민/김/661~681/동해 어구 큰 바위/감은사, 동해/동해(경주시 양북면)'
이 인쇄물을 만들어 배포한 이는 현직 개인택시 기사인 장근희(55) 씨다.
"신라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역대 왕의 계보나 연대를 몰라 어려움이 컸고 일일이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경험 때문에 '신라왕릉 일람표'를 만들게 됐습니다. 경주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장 씨는 2017년 8개월의 노력 끝에 첫 일람표를 낸 이후 최근 내용을 보완해 개정판을 냈다. 1천500부를 만들어 경주시 각 공공기관과 법인택시회사, 개인택시 종사자 등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사실 장 씨는 택시 운전을 하기 전 20여년 동안 경주에 살며 제 발로 왕릉 1곳을 가보지 않았을 정도로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울진 죽변이 고향인 그는 30년쯤 전 직장생활을 하며 경주에 정착했다. 3년 정도 직장을 다녔고 이후 18년간 화물차를 몰다 2012년 9월 개인택시 운전기사 일을 시작했다.
택시를 시작한지 5개월 쯤 지났을 때였다. 엄마와 함께 답사를 온 한 초등학생 승객이 '저곳이 어떤 왕의 무덤이냐'는 질문을 하자 한 마디 대답도 못한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듬해 국립경주박물관이 운영하는 박물관대학 기초반에 등록했다. 토요일 2시간 강의를 듣고 일요일 8시간 답사를 다녀야 하는 1년 과정을 개근했다. 2016년엔 연구반인 2년짜리 문화재 해설사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수업이 있는 날엔 수익금을 맞추기 위해 2시간 일찍 출근하고 3시간 늦게 퇴근하는 식으로 일했다.
장 씨는 지금도 일요일이면 향토사학자들과 함께 답사를 다닌다. 울진 덕신리 고분군부터 부산 복천동 고분군까지 경상권 고분의 80% 이상을 답사했을 정도다.
신라문화동인회가 매월 목요일 오후에 강사를 초청해 여는 특강도 빠짐 없이 듣고 있다. 1천100여명의 회원이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역사문화 관련 행사나 세미나, 강좌 등의 정보를 나누는 네이버 밴드 '문화유산갤러리'도 운영한다.
"경주를 방문한 승객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게 보람이죠. 이를 계기로 관광객들이 경주를 다시 찾게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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