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대구경북 시간여행, 우리의 지금은 어디서 왔을까?
# '금전으로 입학하는 예는 과거 왜놈들이 하였으니 해방 후 조선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구체적인 실례가 있다면 철저 적발 처단하겠다. 돈으로 입학하는 것은 소위 유지신사 자제들이 많으나 그자들은 두뇌가 학습 불량 하다고 본다.' (남선경제신문 1948년 6월 30일자)
해방 직후 언론은 '실력 대신 돈을 주고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조선인이 해서는 안될 일, 왜놈들 짓'이라 했다. 일본인을 업신여겨 낮잡아 부르는 '왜놈'이라는 말까지 써서 강도 높게 비방한 것이다.
당시 돈을 주고 아이를 상급학교에 보내는 일에는 마을에서 힘 깨나 쓴다는 동네 유지들이 앞장서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 없이 돈을 펑펑 쏟아 붓고, 인맥을 동원하는 반칙에도 거리낌 없었다. 지난해 국내 부유층의 고액 입시 코디네이터 고용을 소재로 광풍을 일으킨 드라마 'SKY캐슬'은 오늘날 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 '나는 전회 무료로 생각하였으나 당국에서 너무 미안타고 해서 일원씩을 받게 된 것은 죄송타고 생각한다. 만일 당 극장이 적산(일제나 일본인이 남긴 재산)이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가장 적은 요금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하였으면 한 적산인고로 여의치 못함은 유감이다.'(남선경제신문 1946년 9월 19일자)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해소하고자 경북도는 극장에 소정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도민에게 이를 무료 개방해 노동자가 영화 등 대중 오락을 즐기도록 했다.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현실의 시름을 잊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도시 노동자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오락거리로 영화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쌀 부족에 따른 굶주림과 물가 폭등, 그에 맞물린 경제난은 가뜩이나 가난하던 노동자 삶을 이미 나락에 빠뜨린 뒤였다. 노동 여건이 일제 때만 못할 정도였고 공짜 영화 한 번 본다고 위안받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오늘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봤다면, "우리 현실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했을 지도 모른다.

◆해방기 대구경북 지역사 생생히 소개
우리 역사에서 지역사는 좀처럼 조명받기 어렵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것이 권력층, 지도층의 역사도 아닌 서민들의 생활사라면 말이다.
대구경북에도 삶은 존재했다. 해방 직후 일제 탄압기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터진 봇물처럼 쏟아진 신문들이 크고작은 지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민성일보, 대구시보, 영남일보, 부녀일보, 남선경제신문 등 많은 지역지 창간이 잇따랐고, 각 신문 기사를 통해 당시 우리네 생활상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해방기 대구에서 나온 신문보도를 통해 대구경북 사회상과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신문기사를 소개만 하고 그치지 않는다. 기사 원문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배경을 당시 사료를 참고해 알기 쉬운 단어로 바꾸며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 특징이다.
'쥐 한 마리 5원', '멀미나는 부영버스', '기생아씨들의 반기', '영화 보다 젖 물리느 엄마', '서문시장 어린이 노숙인' 등 책 속 36편의 이야기를 완독하고 나면 독자는 마치 당시의 사회상을 영화 필름 돌려본 듯,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 이야기를 듣듯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직접 겪지는 못했을 해방 직후의 지역사를 말이다.

◆오늘날을 만든 과거, 신문 기록으로 반추
저자가 해방기(1945~1948년)의 지역사를 주 소재로 삼은 것은 당대가 우리 오늘날 삶의 얼개를 만든 시기라고 봤기 때문이다.
35년 간의 일제 지배로부터 벗어난 당시는 대한민국의 첫 단추를 꿰고 첫걸음을 떼는 시작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앞으로 걸어갈 길과 맞닿아 있다. 미래는 현재의 전망이지만 현재는 과거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에 저자는 책 속 '조금 지난 뉴-쓰'들은 과거이지만 오늘과 맞닿은 내일의 이야기라 본 것이다.
대구에서는 1945년 9월 15일 미군정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민성일보를 시작으로 대구시보, 영남일보, 부녀일보 등 여러 신문이 잇따라 창간했다. 또 1946년에는 해방기 경제난의 극복을 주창하며 지금의 매일신문 전신인 남선경제신문이 발행됐다.
신문은 자잘한 일상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온전히 담아내 왔다. 억울렸던 압제의 울분도 신문 같은 매체를 통해 분출되곤 했다. 이런 기록성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적지 않은 신문이 세월의 부침과 경영난 등을 견디다 못해 사라졌다. 당시 신문이 남아 있더라도 보관 상태가 나빠 해독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저자는 한문 투성이라 해독이 더딘, 만지기만 해도 바스라질 만큼 오랜 옛 신문을 서울까지 찾아가 일일이 뒤지며 크고작은 지역사를 발굴해 옮겼다.
저자는 "옛 신문을 뒤적여 대구경북의 어제를 확인하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200쪽, 1만4천500원.

▷박창원은
언론학 박사이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언론에 다양한 대구경북 과거사를 소개해 왔다. 현재 계명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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