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월수입 5천만원 주부? 구민상 심사에 엉터리 서류 내놓은 서구청

입력 2019-09-30 16:06:47

서구청, 26일 ‘제29회 자랑스러운 구민상’ 심사 진행
현장서 구민상 후보 선정에도 의문 나와…신뢰받는 행정 필요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대구 서구청이 선정하는 '자랑스러운 구민상'은 동네 곳곳에서 봉사에 힘쓴 구민을 뽑는 연례행사다. 1991년 이후 지난해까지 50명의 수상자가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한 서구의원은 "수상자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며 걸려오는 전화가 꽤 많다"고 했다. 그만큼 동네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류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서구청의 안이한 행정 탓에 구민상의 위상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직업은 물론 소득마저 엉터리인 서류를 심사현장에 제출한 뒤 그대로 수상을 의결한 것이다.

서구청은 지난달 26일 '제29회 자랑스러운 구민상' 선정을 위해 김종도 부구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기자를 포함한 9명의 위원이 참석했다.

수많은 서류 중 문제가 된 것은 사회봉사 부문 후보 A씨였다. 공적조서에는 직업 '주부', 사실조사서의 직업과 수입은 '주부·5천만원'으로 쓰여 있지만 몇 페이지 뒤에는 난데없이 직업이 회사원으로 바뀌었다.

심사 도중 이런 사실이 지적되자 위원장은 황급히 사실 여부를 확인토록 했고, 사회자는 "서류 작성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 A씨 직업은 주부이고, 월수입은 5천만원이 아닌 500만원"이라고 구두로 정정했다. 다른 후보자 서류에도 과연 오류가 없는지, 과연 이대로 선정에 임해도 될지 의문은 커졌다.

심사과정에서 후보자 선정 방식에 대한 지적도 불거졌다. 한 위원이 후보자 선정 시 홈페이지 등에 공고해 일정기간 열람과정을 거치는지를 묻자 공무원은 "전화로 주민 여론을 수렴해 후보자를 선정하며 따로 공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구민상 후보자로 올라오기까지 후보자 선정 방식도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체 누구에게 전화로 여론을 수렴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러 문제 제기에도 불구, 서구청은 수상자 선정을 그냥 진행했다. 이에 기자는 합의추대 방식이었던 선정 방법을 투표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결국 무효표를 던지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하는데 그쳐야 했다.

이날 회의 끝 무렵 서구청이 내놓은 투표용지에는 '심사 서류의 신뢰성이 있는지'를 묻는 항목이 쓰여 있었다. 엉터리 서류를 가지고 심사의 결론을 내도록 밀어붙이면서 '신뢰성'을 되묻는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