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생활에 긴요한 것 세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까. 뭐니 뭐니 해도 의․식․주라고 답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의'를 첫 번째로 꼽는 것은 그만큼 옷이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부터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고 하였다. 또한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동물의 뼈를 이용한 골침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쇠로 된 바늘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바느질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중노동이었기 때문에 재봉틀을 개발하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방적기와 방직기가 발명된 뒤에도 바느질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봉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하지만 좀처럼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846년 미국인 엘리어스 하우가 두 가닥의 실을 연결시켜 바느질이 가능한 오늘날의 재봉틀과 유사한 재봉틀을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뒤이어 아이작 싱어는 위쪽에 구멍이 나 있는 재봉틀 바늘을 개량하여 오늘날처럼 바늘의 아래쪽에 구멍을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였다. 그 뒤 앨런 윌슨이 회전식 갈고리를 발명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식 재봉틀을 완성시켰다. 그로 해서 재봉틀 제조사인 싱거(Singer)는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 재봉틀이 처음 들어온 것은 1877년이었다. 일본에 여행 갔던 김용원.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부친이 사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1896년 재봉과 자수가 이화학당의 교과목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많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05년에는 미국의 싱거사가 한국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1938년 외국 재봉틀을 도입하였고, 1950년대 후반부터 자체개발에 착수하였으며, 1966년 최초의 국산제품이 생산되었다. 그 뒤 기술 수준이 크게 향상되어 지금은 수출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정에서는 재봉틀을 이용하여 훨씬 빠르게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수의 나이 어린 여성들이 의류 공장에 취업하게 되었다. 서로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기를 쓰고 재봉틀을 밟았다. 그로 해서 많은 의류 생산이 가능해졌으나,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적잖은 부작용이 있었고, 노동 착취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우리 집에는 아직도 재봉틀이 있다. 세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아내가 손수 옷을 만들어서 입혔다. 빠듯한 살림살이를 도맡아 살아야 했던 주부의 고단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눈이 침침해서 바늘에 실을 꿰는 게 쉽지 않다며 투덜거린다. 그런데도 재봉틀을 고물상으로 보내려고 하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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