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라이라이(来来)~ 날 보러 와요"... 타이완 타이난(臺南) & 가오슝(高雄)

입력 2019-09-18 18:00:00

친절이 몸에 밴 대만인들... 오랜 공존의 경험에서 나온 친절
BCP, 안평수옥, 스차오녹색터널... 신구조화, 자연조화 잘 살린 관광지
공자묘와 옛거리들... 푸중지에, 션농지에에서 인생샷 건질 기회
가오슝 보얼(駁二)예술특구... 가오슝의 새로운 랜드마크
치진해변에서 아이허강 사이 뱃길에서 보는 석양은 그림 한 폭

오랜 기간 가오슝의 랜드마크였던 85스카이빌딩이 보얼예술특구와 어울려 도심 풍경을 만들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오랜 기간 가오슝의 랜드마크였던 85스카이빌딩이 보얼예술특구와 어울려 도심 풍경을 만들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하늘이, 높다. 바람에 가을향이 실렸다. 추석연휴가 변곡점이었다. 여름여름하더니 가을가을거린다. 또 한 계절을 버텨냈다. 움직이기 좋은 때가 왔다. 여행자에겐 최고의 팁, 비성수기다. 가까운 해외여행으로 방향을 튼다. 비행기도 타기 전에 마음이 뜬다. 콧바람도 허파 가득이다.

그런데, 막상 갈 곳이 마땅찮다. 일본은 개점휴업이고 중국은 비자 발급이 골치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저어야 하는 법. 대만이 '라이라이(来来)~ 날 보러 오라' 손짓한다.

케이블방송 여행프로그램에서는 망고빙수와 블랙밀크티로 이민을 고민한다. 그러나 얼리버드 여행자에겐 수도 타이베이, 예스진지(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도 식상하다. 지난 해 대만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100만 명을 넘었다.

위도를 낮춘다. 가오슝과 타이난이다. 대만 4대 도시(타이베이, 타이중, 가오슝, 타이난) 중 최남단 2곳이다. 사람 가리지 않는 친절과 가심비 높은 물가도 매력이다. 가자, 여름휴가 기분 만끽할 수 있도록 아직 여름이 남아있는 대만이다.

◆대만의 오랜 수도, 타이난

타이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의 벽화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의 벽화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그래서 오래된 도시다. 우리로 치면 경주쯤 된다. 네덜란드가 무력으로 대만 남부를 점령했던 1624년부터 수도 역할을 했다. 1887년 타이베이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대만의 중심 도시였다.

그래서였는지 타이난 땅은 함부로 파내기 거북했다. 개발 논리와 보존 논리의 대립은 오랜 기간 수도였던 곳들이 겪는 진통이다. 요즘의 융복합처럼 자연스레 조율의 지혜가 생긴다. 이곳에도 신구조화를 노력한 흔적이 도심 곳곳에 보인다.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 BCP(Blueprint Cultural & Creative Park)가 대표적인 공간이다. 원래 연초창고 등 물류창고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으로 내주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대구로 치면 제일모직 터를 삼성창조캠퍼스로 바꾼 것과 흡사하다.

물류창고로 쓰이던 공간이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시민공원으로 거듭났다. 타이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물류창고로 쓰이던 공간이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시민공원으로 거듭났다. 타이난 블루프린트 문화창의공원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다른 점은 하나. 타이난은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예술촌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이다. 그들의 예술적 감각은 제각기 개성으로 발현되면서 집단적으로 표출됐다. 개별적인 멋의 공간들이 한데 몰려 있는 모습은 흡사 프로젝트형 공원처럼 보인다. 대만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의 사진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스고이(일본어로 '좋다'는 뜻)'와 '끝내주네'가 '하오하오(好好)'에 섞여 스스럼없다.

신구조화는 외국 문물에 대한 옅은 거부감과 연결된다. 대만은 과거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등 외국은 물론 명나라 한족, 청나라 여진족의 지배를 받았다. 사방이 바다인 섬나라는 다양한 사람들의 용광로가 됐다.

공존은 필수였다. 일본을 친절한 나라라고들 하지만 대만도 그에 못지않다. 가르쳐서 배운 친절이라기보다 몸에 밴 친절, '다짜고짜 친절'이다. 친절의 기원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50년 지배와 연결하기보다 다른 이들과 같이 살아야했던 경험, 공존에서 찾는 이유다.

◆용나무와 맹그로브의 초대

반얀트리, 용나무가 창고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이는 안평수옥의 모습.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반얀트리, 용나무가 창고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이는 안평수옥의 모습.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자연과 조화를 이뤄 관광 명소가 된 곳도 있다. 언뜻 보면 나무가 주인공이고 집이 나무에 얹혀 있는 외관이다. 반얀트리, 용나무(榕樹)의 초대를 받아 간 '안평수옥(安平樹屋)'이다. 1867년 설립된 영국의 무역회사, 덕기양행(德記洋行)의 창고였다. 일제점령기이던 1911년에는 대일본염업주식회사 안평출장소의 창고로 사용됐다.

안평수옥 내부에서는 용나무 줄기와 잎이 창고의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안평수옥 내부에서는 용나무 줄기와 잎이 창고의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1945년 일본이 물러간 뒤 50년 넘게 방치됐던 곳을 용나무가 차지했다. 점유권을 주장해도 될 만큼 벽과 지붕을 뚫고 자라면서 이곳의 주인공이 됐다. 굵은 빗줄기처럼 줄기가 처져 내린 용나무는 한 그루만으로도 숲처럼 보인다. 덕분에 그늘이 크다. 폭염 대피용으로 최적화된 대만의 국민 나무로 불러도 손색없다.

작은 아마존이라는 별칭을 가진 스차오 녹색터널로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작은 아마존이라는 별칭을 가진 스차오 녹색터널로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나무를 주연으로 삼은 자연생태관광지, 스차오(四草) 녹색터널도 있다. 별칭이 '작은 아마존'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수로 양옆에 맹그로브가 머리를 맞대 만든 터널이다. 터널 아래로 배를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 천천히 지난다.

안평수옥이든 스차오 녹색터널이든 유명 관광지에서는 반드시 '정성공(鄭成功)'을 만난다. 명나라 부흥운동의 중심인물이다. 네덜란드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한동안 대만을 지배한다. 실제로 이름이 성공, 'Success'다.

타이난시는 17세기 중반 명나라 부흥운동을 벌였던 정성공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시는 17세기 중반 명나라 부흥운동을 벌였던 정성공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 도심 로터리에 정성공의 동상이 있고 '성공로'라는 대로가 있을 만큼 타이난 사람들에게는 친근하다. 타이난시에서 마케팅 소재로 삼을 만큼 열성적으로 알리고 있는 인물이다. 맥주 등 먹거리에 지역 한정판 모델로 등장한다. 한자 이름도 성공을 뜻하는 成功이다보니 '一定要成功'이라 써붙여 마케팅을 펼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성공이 필요하다'쯤 되는 문구로 물건을 집어 들게 만든다.

◆공자묘와 옛 거리

공자묘 맞은 편에 있는 푸중지에 입구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오가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공자묘 맞은 편에 있는 푸중지에 입구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오가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명나라 한족의 영향이 컸던 만큼 공자묘도 자연스럽다. 대만의 첫 번째 공자사원이자 최초의 학교다. 대만으로 이주한 공자의 후손이 1655년 지었다고 한다. 총 15개 건축물이 있는데 학교와 사원이 함께 들어서 있다.

명나라를 재건하겠다는 정성공의 뜻에 따라 인재를 양성하는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최고의 학교라는 뜻의 '전대수학(全臺首學)'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매년 공자탄신일(9월 28일)에는 대성전(大成殿) 앞에서 공자탄신일을 기리는 성대한 의식이 열린다고 한다. 학교다 보니 공부의 신을 모신 문창각(文昌閣)도 두고 있는데 입시, 승진시험 등을 앞두고 대만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라 한다.

관광객의 입소문을 탄 션농지에의 야경. 데이트 성지인데다 인생샷까지 건질 수 있어 사랑받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관광객의 입소문을 탄 션농지에의 야경. 데이트 성지인데다 인생샷까지 건질 수 있어 사랑받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에는 오래된 거리, 라오지에(老街)가 많이 남아 있다. 역시 신구조화의 증거다. 공자묘 맞은 편에도 푸중지에(府中街)라는 옛 길이 있다. 녹색으로 한가득 치장된 길은 푸름푸름하면서도 고풍스러워 옛 길의 정취가 배가된다.

입소문이 많이 난 곳은 션농지에(神農街)다. 아기자기한 소품점과 가구점, 카페가 있어 데이트 성지로 알려졌다. 2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모델로 나서준다. 야외 스튜디오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해 지기 직전 노을과 어울려 초저녁 사진이 예술작품 버금가게 잘 나온다.

◆가오슝 보얼(駁二)예술특구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 물류를 실어나르던 철로 위로 잔디가 조성돼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 물류를 실어나르던 철로 위로 잔디가 조성돼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타이난과 가까운 가오슝은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대만 제1의 항구도시다. 우리로 치면 부산쯤 된다. 오랜 기간 일본, 류큐(오키나와)와 교역하려는 상선들의 중간 기착지였다.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여러 문화가 혼재되는 건 인류사적으로도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런 풍요 속에서 가오슝시는 2000년 재미있는 실험을 한다. 타이완 국경절 축하 불꽃놀이 장소로 가오슝 부두가 선정된 뒤다. 물류창고로 쓰이던 부두의 넓은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맡긴 것이다. 10년 넘게 방치돼 있던 물류창고였다. 타이난이 도심 물류창고를 내준 것과 같지만 규모가 훨씬 컸다. 한나절을 다녀야 얼추 다 볼 수 있을 만큼이다. 보얼(駁二)예술특구의 시작이다.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금싸라기 땅일 것이 분명한 곳에 대형 예술작품이 설치됐고 을씨년스럽던 잿빛 벽은 그림으로 채워졌다. 물류를 실어 나르던 철로와 주변 부지는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이내 넓은 물류창고는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공연장 등으로 활용됐다. 광활한 야외미술관에 매점처럼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는 짜임새다. 오랜 기간 가오슝의 랜드마크이던 85스카이빌딩도 보얼예술특구의 작품처럼 보이게 됐다.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만화 속 캐릭터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설치예술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만화 속 캐릭터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이제 '2번 부두'라는 뜻의 보얼을 가오슝의 랜드마크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개발 이론으로 접근했다면 나오지 못했을 역작이다. 오직 보얼예술특구를 보기 위해 가오슝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진해변과 아이허(愛河)강

검은색 모래와 석양으로 인기가 높은 치진해변의 모습.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검은색 모래와 석양으로 인기가 높은 치진해변의 모습.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가오슝의 볼거리로 치진해변을 꼽는다. 그러나 절경은 디테일에 있다. 반드시 봐야할 곳 리스트에 해변에서 아이허(愛河)강으로 넘어가는 바다뱃길을 넣어야 한다. 뱃길을 지나는 시각이 중요하다. 석양이 지는 시각이어야 한다. 뱃길은 7분에 그친다. 그러나 머릿속에 남는 잔상은 평생 간다. 저녁노을이 바다물결에 뿌려진 풍경은 타이완에 대한 이미지로 오래도록 각인될 만큼 압도적인 그림이다. 덤으로 가오슝 해안 건축물과 항구의 조화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치진해변에서 아이허강으로 넘어가는 뱃길에서 본 가오슝 시내 빌딩숲.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치진해변에서 아이허강으로 넘어가는 뱃길에서 본 가오슝 시내 빌딩숲.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10분마다 배가 있다. 요금은 30대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천150원이다. 오토바이를 탄 채로 배에 오르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다. 현지인들의 대중교통 수단인데 관광객들도 같이 올라탄다. 배에서 내릴 때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행렬도 볼거리다. 모든 게 다 희한하다. 관광용 뱃놀이를 원한다면 아이허강에서 즐길 수 있다. 연인과 사랑을 이뤄준다는 아이허강 야경에 세레나데 부르기 좋은 유람선과 곤돌라가 떠다닌다.

가오슝 야경의 한 축인 아이허강 위를 곤돌라와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가오슝 야경의 한 축인 아이허강 위를 곤돌라와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취재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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