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재 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
2009년 4월 6일 이탈리아 라퀼라 지역에서 규모 6.4 지진이 발생했다. 300여 명이 사망하고 1천500여 명이 부상했으며 7만5천 가구가 처참하게 사라진 지진이다. 일본의 고베 자연지진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작지만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재난은 아니다. 올해로 라퀼라 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다. 지진재난 전공학자들은 '라퀼라 지진 10년'이란 주제로 연구결과물을 발표했다.
8년 세월이 지나면 포항에서도 '포항지진 10년'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것이다. 라퀼라 지진 10년처럼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행사를 개최할 것이다. 외국학자들이 언급한 담론을 검토하면, 포항지진 10년 이후 전개될 학술적 담론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라퀼라와 포항의 지진 성격과 피해 규모가 다르다. 그래도 재난에 대응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계획과 방법이 다소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다. 공통분모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것이 라퀼라 교훈을 살리는 포항지진의 교훈일 게다.
서구학자들은 라퀼라 지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정치 집단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가. 이탈리아 정부가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개입했는데 10년이 지난 결실은 무엇인가? '정치적인 역할론'의 결과가 어떤가. 또 정부의 개입 방식이 10년이 지나 얼마나 변화했는가도 물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정치 집단들의 개입은 라퀼라의 '제2의 지진'으로 이름이 붙을 만큼 국민을 실망시켰다. 정부는 개입했지만 주민의 요구나 참여는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도시재활 정책을 하향식에 바탕을 두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학자들은 이를 국가의 '군사적인 통제방식' 혹은 '구조적인 폭력'의 개념으로 해석했다.
라퀼라 지진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재난에 대응 및 사전예방 방식과 비교하는 프레임을 적용했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보다 피해주택재건사업에 기업의 참여가 컸다는 점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서로 특이한 소통방식이 있었다. 그 방식은 '진행의 방해' '지연' '부패' 등의 특성을 가졌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연상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특이한 소통방식이었다. 포항도시재건사업이 이탈리아와 같지는 않겠지만 수천억원이 투자되는 사업인 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진과학자들과 과학자 공동체는 라퀼라 지진에서 학습해야 할 특별한 교훈이 있다고 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주목했던 바로 라퀼라 재판(LAquila Trial)이다. 지진 위기 대응에 참여했던 6명의 과학자들은 1심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지진 예측을 잘 못하고 주민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었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지진과학계는 재판을 통해 지진 위기 예측과 진단, 소통 방법, 기술, 지진과학자들의 접근 방식 등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포항지열발전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열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지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장밋빛 비전만 제시했다. 수리 자극을 다섯 차례 실시할 동안 포항시와 주민 참여도 배제했다. 지진위해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주민 소통 역시 없었다. 그들은 라퀼라 재판의 교훈을 몰랐을까?
포항지열발전소의 전문가들이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 결과가 학술적인 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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