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곳곳에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나무가 많다. 오래된 나무는 우리네 고단한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가 하면 마음이 답답할 땐 위안이 돼 주기도 한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비록 찢기고 부러져 상처투성이지만 이들 나무는 품격과 멋이 있다. 실제로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나무도 있고, 또 평범한 나무에 스토리텔링 한 나무도 있다. 질곡의 역사를 이겨내고 용케도 살아남은 나무 몇 그루를 소개한다.

◆ 인물과 역사를 품은 오랜된 나무
▷이상화 나무 '수수꽃다리'=이 나무가 있는 곳(대구 중구 서성로)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항일민족시인 이상화(1901~43)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상화 생가터는 1956년 4개 필지로 분할되었는데, 안채에 해당되는 이곳은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마당에는 높이 5m, 둘레 82cm, 200년 된 수수꽃다리(한국산 라일락)가 자라고 있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온몸으로 말해주듯 뒤틀려 있다. 상화는 이곳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이곳 사랑채에서 1919년 대구 만세운동 인쇄물을 만들었으며, 담교장이란 현판을 걸고 항일지사, 지역 문인들과 식민지 현실에서 의기와 문담을 나누었다.
수수꽃다리는 상화와 그의 형제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아직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권도훈 카페 대표는 "이 나무는 이 자리에서 상화 시인의 탄생과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지켜보며 소년 이상화에게 시심을 심어주었다. 시로 저항한 시인과 같이 나무도 몸을 비틀어 일제에 저항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이어 "수수꽃다리 2세 나무를 복원해 학교에 나눠져 상화정신을 기렸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최제우 나무 '회화나무'=대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에는 400년쯤 되는 회화나무가 우뚝 서 있다. 높이 17m, 둘레 2,8m인 이 나무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1824~64)가 경상감영감옥에서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 '최제우 나무'라 이름지어졌다. 회화나무는 선비의 집이나 서원 또는 대궐 같은 곳에 심던 기품 있는 나무인데, 심으면 출세하였기에 심는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최제우는 일찍이 동학을 창시하고 사회평등을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나라를 어지럽힌 죄로 경상감영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끌려가 처형을 당하게 된다. 이곳은 감영감옥이 있었던 터로 최제우가 감사에게 불려 다니며 문초를 받는 고뇌에 찬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나무로 추정하고 있다. 원유리(초교 3학년) 양은 "교정에 이런 역사적인 나무가 있는 줄 몰랐다. 저도 노력해 사회의 큰 나무가 되겠다"고 했으며, 조희수(초교 3학년) 군은 "개교 100년이 훨씬 넘은 학교에 수백 년 된 회화나무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성 나무 '감나무'=계산성당 옆 등나무 벤치 근처에 떡 하니 서 있는 감나무가 바로 '이인성 나무'다. 대구 출신 천재화가 이인성(1912~50)의 작품 '계산동 성당'에 그려진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작품 '계산동 성당'(34.5㎝×44㎝)은 전통 기와지붕이 약간 보이면서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중앙부 왼쪽에 두고, 성당 사제 숙소 벽면을 붉은 색조로 그린 수채화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인성에게 계산성당은 특별한 존재였다. 계성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치던 계산성당은 소년이 그림에 담고 싶은 대상이었다. 1929년 17살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일찌감치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인성은 계산성당을 화폭에 담아 작품 '계산동 성당'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고딕양식의 성당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대상은 '감나무'다. 김석금 골목문화해설사는 "계산성당을 1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이 나무에는 이인성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비록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림과 함께 남아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제명 나무 '이팝나무'=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 앞 정원에는 200여 년째 흰꽃밥을 짓기 위해 눈감고 기도에 들어간듯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나무가 있다. 일명 현제명 나무로 불리는 노거수 '이팝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현제명은 어린시절 대구제일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그리고 계성학교를 다녔는데 청라언덕을 오르내리며 등·하교 했다. 현제명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년기에 이 언덕길을 수없이 오가며 또래들과 장난도 치고 키가 큰 이팝나무 밑에 앉아 악상을 다듬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석금 해설사는 "현제명 주위의 환경이 음악적 소양을 기르기에 충분했다. 이 이팝나무도 한 몫을 한 것"이라면서 "국민가곡으로 불리는 '고향생각, '그 집앞', '산들바람', '희망의 나라로' 등 많은 작품도 그 시절 이 이팝나무 아래서 구상했던 것들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침나무 '회화나무'=달성공원에는 조선 초기 문신 서침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 '서침나무'로 달성공원의 상징처럼 공원 중간에 당당한 자태(높이 15m, 둘레 3.2m)로 서 있다. 수령 300년으로 달성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회화나무가 서침나무로 불리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서침은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달성(지금의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했다. 조정에서는 공을 기려 상을 내리려 했으나 서침은 상 대신 주민들에게 거둬 들이는 환곡(춘궁기에 관아에서 빌려준 양식)의 이자를 경감해 주도록 조정에 청원했다. 은덕을 입은 고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서침의 숭고한 애민사상을 기리기 위해 달성의 상징인 회화나무를 심었다.
김충기(75) 씨는 "매일 달성공원을 찾는데 그늘이 좋아 이 나무 아래서 쉰다"면서 "이런 유서깊은 나무인줄 몰랐다. 유래를 알고 보니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김석금 해설사는 "서침나무는 달성 서씨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보여주는 나무"라면서 "300여 년의 수령도 자랑거리지만, 하늘로 쭉 뻗어 올라간 줄기가 장대한 멋을 풍겨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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