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비극 넘나든 노역…관객의 영원한 아버지 되겠다"

입력 2019-09-18 11:42:53

대구 노역 배우 강석호…연극 60여 편 600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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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똥글뱅이 버스'에서 득구 영감 역 강석호(왼쪽)

"40대 나이에 70, 80대 할아버지나 아버지 역을 소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몸 동작에서부터 걸음걸이, 말투 등 진짜 노인처럼 연기를 해야하니까요. 희극이든, 비극이든 다양한 캐릭터의 노역 역활로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싶어요."

연극 배우 강석호(48). 대구시립극단 차석단원인 그는 대구에서 연극 무대에서 노역(老役)이라면 최고 연기를 자부하는 배우다. 지역 연극계에서 나이는 중간 쯤 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연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그는 연기 인생 20여 년 동안 전체 60여 편의 출연 작품 중에 600회 정도가 노역 배우로 활약했다. 그는 40세에 첫 노역 배우로 극단 고도의 작품 '오 마이 갓 파더'에서 아버지 역을 연기한 것을 비롯해 대구시립극단 작품 '레 미제라블' '갈매기', '똥글뱅이 버스' '인형의 집에서' '30일의 파라다이스' 등에서 수많은 노역 연기를 수행해 왔다.

"오랫동안 아버지라는 역을 맡아 연기하다보면 맡은 배역에 동화되기 쉬워요. 다시 말해서 노역에 몸이 체화한다는 거죠. 현실에서 무대의 아버지와 구분 못해 힘들 때가 많아요. 가정에서도 영감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핀잔을 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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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 미제라블'에서 형사역 강석호

그는 6, 7년 동안 매년 공연된 '오 마이 갓 파더' 작품에서 '정석두'란 아버지 역을 100회 이상 맡았다. '오 마이 갓 파더' 는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재산분배로 자식들과 다투다 아버지가 숨진 뒤에 자식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혼 후 자식이 없었던 그는 처음 아버지 역을 맡았지만 '아버지'란 의미를 알 수 없어 고민을 많이 했다. 연극계 형님들을 찾아 조언도 구하고 대체재를 찾기 위해 울기도 했다. 그러다 늦둥이로 딸을 얻게 되면서 노역 연기 인생에 탄력을 받게 됐다. 태어난 딸 아이를 보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버지'라는 의미가 가슴에 느껴지더란다.

"작품 '오 마이 갓 파더'에서는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해야하는 장면이 나와요.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인데 폭력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극이라하지만 폭력은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극의 시대적 상황을 잘 이해하고서는 행동을 하게 됐지요."

그는 '똥글뱅이 버스'에서 득구 영감의 역도 완벽히 소화했다. '똥글뱅이 버스'는 오지버스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만나 사랑을 하다 헤어지고 30년 후에 다시 만나 살게 된다는 휴먼극이다. 이 작품에서 득구 영감은 말 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순정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하지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할머니를 휘어잡는 매력적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반적으로 연극에서는 노역 연기는 힘을 빼고 거동이 느릿하고 대사도 중저음을 유지해야하는 쉽지 않다. 실제 노인은 템포, 즉 긴장감이 잘 안나와 노역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젊은이가 노역을 맡으면 템포 유지로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안정적 노역 캐릭터를 갖고 있다고 한다. 외형적 이미지는 물론 음색, 연기의 폭 등이 노역에 최적화돼 있다는 것이다. 또 비극과 희극을 잘 넘나들고 악역, 코믹 뭐든 잘 소화하고 있다.

"연극이 끝난 후 관객들과 사진 촬영을 하잖아요. 여성 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나 손을 꼭 잡아주며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로 역을 잘했구나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그는 연기 이외에도 극작, 연출, 각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극작은 '아들은 엄마의 나이를 모른다'(극단 온누리) 등 8개 작품, 연출은 아동극 시리즈 '소리야 놀자'(대구시립극단) 등 10여 편이 있다. 또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각색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노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행복이지요. 앞으로 친구 같은 다양한 아버지의 캐릭터로 모든 관객들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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