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일 뿐' 정치와 사회 등과 무관하다"고 여겼던 작가는 독일 유학(2002~2010)을 전기로 자신의 예술관과 작품 제작방법에 일대 변화를 갖게 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조각의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찾던 중 4각의 프레임에 갇힌 평면예술이 의외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조소작업과 평면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창작방법을 선보이게 된다.
주인공은 세계 각지의 전쟁이나 재난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사진을 흰색 이미지로 재현해 매체의 속성과 대중의 수용적 태도에 관한 사유를 유도하며 특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하태범(46)이다.
리안 갤러리 대구점은 하태범의 개인전 'White-Facade'전을 10월 19일(토)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발표해온 'White'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기존 실현양식인 'Illusion'연작과 함께 새롭게 시도하는 종이와 스테인리스 스틸 커팅을 이용한 일종의 부조 조각인 'Surface'와 'Facade' 연작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마치 흑백사진을 찍은 것 같은 'Illusion'연작은 사실은 지구촌 전쟁이나 참사에 관한 미디어 보도사진을 참고로 건물을 흰색 미니어처로 정밀하게 제작한 후 다시 사진을 촬영한 작품이다. 이는 재난현장의 전체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기보다는 피격된 특정 건물의 모습이나 완파에 가깝게 철근이 드러난 건물 한 채를 모형으로 제작하고 여기에 당시의 빛과 시간대, 렌즈의 각도 등을 최대한 반영해 촬영한 작품이다. 따라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미니어처를 찍은 사진이기보다는 실제 당시의 건물을 고스란히 찍은 듯한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다만 부서진 건물만 피사체로 남아 있을 뿐 기타 배경은 없다.
"전쟁이나 참사로 폐허를 미디어를 통해 바라볼 때 수용자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 장면을 소비할 뿐입니다. 그 속에서 벌어졌던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공포는 와 닿지 않는 셈이죠."
실제의 참상 보도사진은 폭파된 건물, 혼돈과 폐허로 점철된 환경,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과 폭력성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이를 대할 때 우리는 연민의 감정과 동시에 그것과 심리적 거리ㄹ르 두며 안도감을 갖는 상반된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태범은 'Illusion'연작에서 본래의 여러 색이 전달하는 시각적 폭력성을 하얗게 탈색하고 구체적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보는 이의 감정을 중립적 상태로 유도한다. 이 점에서 작가는 처참한 현실에 대한 감정적 자극이 점점 무뎌지고 무신경해짐을 보여준다. 그에게 흰색은 바로 '폭력성'에 대한 역설적 고발이자 인간의 '망각'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Surface'와 'Facade' 연작은 'Illusion'연작의 확장이지만 표현양식은 다르다.
일종의 부조 조각인 'Surface'와 'Facade' 연작은 종이와 스테인리스 철판을 이용해 부서진 건물이나 총격으로 인한 벽면의 수많은 총탄자국을 묘사하고 있다.
"'현실을 심층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허구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극무대의 경우 과감한 생략과 삭제를 통해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환경적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결국 3차원의 부조 조각은 파괴된 건축물의 파사드(정면 혹은 단면)를 참사의 현장에서 파생시킴으로써 확장된 시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재현된 실재로서의 '연극성'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연극성은 참사의 현실 그 자체를 다시 보게 하는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테인리스 철판 곳곳을 뚫어 놓은 작은 총탄 구멍들은 공포의 시간들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하태범의 이번 전시작품은 그동안 무거운 현실에 방관했던 윤리적 책임감을 환기시키고 정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대면하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 문의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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