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옥 소설가
한 시간을 달려 고도의 도시 경주에 닿았다. 분황사와 황룡사지 절터를 지나쳐 미술관을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남아 있으면 절터에 들를 생각인데 시간이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생각을 그리는 화가'라는 네임 밸류답게 미술관 마당에 알을 보고 새를 그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통찰'이 있고, 그 앞에 두 개의 푸른 사과가 서늘한 빛을 뿜고 있었다. 한 그림 속에 낮과 밤이 함께 존재하는가 하면 바다에 큰 바위가 떠 있고,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쓴 '이미지의 배반'과 상체는 물고기인데 하체는 사람인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인어를 그린 마그리트의 그림을 직접 보게 된 것이 내게는 슬쩍 다가온 행운 같기만 하다.
마그리트의 많은 대표작들 중에서 유독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 있었다. 얼굴에 베일을 두른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그림 '연인'을 보는 순간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입술을 대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얼굴을 감은 베일 때문에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다. 롤랑바르트의 말대로 '현존하는 나는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는 기다림과 부재를 대변한 환각이련가. 사랑의 본질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마그리트 14세 때에 우울증을 앓던 그의 어머니가 잠옷 자락을 덮어쓰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잠옷자락이 달라붙은 어머니의 주검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전한다. 그 슬픈 기억이 그의 작품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한 어머니의 자살이 남겨주었을 파문이 얼굴을 가린 여러 형태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한 겹의 베일 너머에서 느끼게 될 외로움과 고독이 이리도 마음 저리게 와 닿은 것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내 상투성에 기인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생각'에 초점을 실은 '연인들'의 고독을 실감나게 느낀 탓이려니 여겨본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연인이나 가족, 동료, 친구들과 수많은 관계를 이루고 살지만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얼마만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지, 혹은 그들에게 자신을 얼마만큼 내어주고 있는지, 사랑하는 이를 맞은편에 앉혀두고 얼굴에 베일을 두른 듯 곁에 있는 이를 '부재하는 사람' 취급한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돌아오는 길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일몰을 안고 왔다. 화염의 잔영처럼 아름다웠다. 사랑은 소금처럼 자신을 녹이는 아픔이고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는 고통이라던가. 짧은 일몰처럼 인간의 생이 한 자락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정옥 소설가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