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보고 싶어서 영화관에 간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멋진 연기에 매료되어 영화 속으로 빠져든다. 그런가 하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영화도 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진솔한 이야기, 뜨거운 사랑이나 아름다운 인간애로 해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작품이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즐겁다.
대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영화관은 만경관이다. 1922년 이제필(李濟弼)이 향촌동 48번지, 지금의 유료주차장 자리에 세웠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라는 자부심과 민족의식이 대단했었다. 1930년대 초반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인 종로 1가로 옮겼다.
그리고 연간 200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함으로써, '한국영화를 보고 싶으면 만경관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누렸다. 그동안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1986년 지역 최초로 2개의 복합관을 개관하였으며, 2002년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상영관(Multi Flex)을 개관하였다. 그러다가 2018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으나, 롯데시네마가 인수하여 다시 개관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문을 연 영화관이 대구극장이다. 1923년 한국인들이 공동 투자해 세운 극장으로, 일본인들과 공동 설립한 조선관(朝鮮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었다. 영화 상영보다 신파극이나 악극 공연 또는 변사가 해설하는 무성영화(無聲映畵) 상영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같은 개별 의자가 없었으며, 다다미가 깔린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보았다.
그러다가 광복이 되자 각종 공연․대중 집회․영화 상영 등 지역 문화 예술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1958년부터 영화 개봉관으로 자리 잡았고, 1963년 화재로 건물과 영사시설이 모두 불타 버렸으며, 1965년 건물을 다시 지었다. 한때 관객 동원 1위 자리를 지키며 지역을 대표하던 극장이었으나 2002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1938년 키네마구락부(지금의 CGV 대구 한일 자리)가 문을 열었다. 당시로서는 동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였다. 광복이 되자 소유권이 경상북도로 넘어갔고, 건물의 내부 공간이 크고 넓어서 각종 연주와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다. 1949년 문화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으로 관리권이 넘어갔다.
6․25전쟁으로 서울의 국립극장이 무너지자 국립 중앙극장으로 지정되었고, 1957년 개인에게 불하되어 한일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6년 본격적인 영화 전문관으로 개관하였고, 영화관 자체가 대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할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그 뒤 1996년 건물을 허물고 복합상업건물을 지었으며, 2002년 '씨네시티 한일'로 재개관하였다.
그밖에 자유․송죽․제일․아카데미․아세아극장 같은 영화관이 잇달아 문을 열었고, 볼거리 즐길거리가 없던 한 시절을 풍미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환경의 변화와 다양한 영상기기의 보급, 그리고 관람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한때는 40개 가까운 크고 작은 영화관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지금은 7, 8개의 복합상영관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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