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이름은 한글의 발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나무 이름 중에는 한글 이름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무 이름의 한글화는 최근의 일이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구 동대구로의 상징 나무인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인 개잎갈나무는 히말라야시더, 동구 지묘동의 표충단 주변에 살고 있는 부처꽃과의 갈잎떨기나무인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 불렀다. 그간 우리나라의 나무 이름은 대부분 한자였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나무의 학명을 가장 많이 붙인 사람은 일본의 식물학자였다. 식물의 학명은 나무의 한글 이름과 더불어 식물의 자주화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작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박달나무는 한자 '단'(檀)의 한글 이름이다. 그러나 박달나무의 '박달'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시경"에 등장하는 '단'은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가 아니라 느릅나뭇과의 청단(靑檀)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남자" '시칙' 10월에 등장하는 박달나무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인지 모호하다. 다만 여기서는 단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로 이해하고자 한다. "회남자" '시칙' 10월에 박달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달에는 크게 술을 마시면서 겨울 제사를 지내고, 천자는 하늘의 신들에게 내년의 복을 빌고 토지신에게도 대대적으로 빌고 제사 지낸다. 이 일들이 끝나면 조상신들에게도 제사 지내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휴식하게 한다. 장수에게 명하여 무술을 강론하게 하고, 활쏘기 말몰이 법을 익히게 하며, 서로 힘을 겨루게 한다. 어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명하여 하천세와 어업세 등을 거둬들이게 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한다.
"회남자"에는 박달나무를 10월의 나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달나무는 줄기가 회화나무처럼 검다. 그래서 "주례"에서는 겨울의 나무로 삼았다. "회남자"에서 10월의 나무로 삼은 것도 줄기가 검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검은색은 음양 사상에서 겨울에 해당한다.
박달나무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나무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나무다. 박달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깊은 산속으로 가야만 한다. 박달나무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평안부"의 기록에서 보듯이 단군신화와 관련 있는 나무라서 신성한 존재였다. 물론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단'이 박달나무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지만 단군과 박달나무를 연결시키는 사례는 적지 않다.
주변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이 나무를 많이 사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달나무는 물에 가라앉을 만큼 무겁고 단단해서 홍두깨나 방망이 재료로 많이 활용했을 뿐 아니라 가구재·조각재·곤봉·수레바퀴 등으로 사용했다. 박달나무로 배와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한 사례는 "일성록" 정조 17년(1793) 12월 11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박달나무를 만난 곳은 문경새재였다. 박달나무의 줄기는 어릴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다르다. 어린 박달나무는 줄기가 매끈하지만 나이 든 박달나무의 줄기는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물박달나무도 함께 살고 있다.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형제지만 줄기가 여러 겹으로 얇게 벗겨진다. 아울러 박달나무의 열매는 하늘을 향하지만 물박달나무의 열매는 땅으로 향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는 박달나무, 물박달나무와 열매 모양이 다른 까치박달을 만날 수 있다.
박달나무는 단군과 단기를 비롯해서 박달나무고개 등 인명과 연호 및 지명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그만큼 박달나무가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박달나무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자존에 무척 중요하다. 대구시내 가로수나 공원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있다면, 박달나무를 통해 단군신화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대구의 문화행사는 한층 뜻깊고 풍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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