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쏘리웍스'

입력 2019-09-03 10:14:40 수정 2019-09-03 18:29:38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대 초반의 여성이 목이 부었다며 외래 진료실을 찾아온 건 10년 전 이맘때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목 부위의 림프샘에 가는 바늘로 '세포 검사'를 시행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왼쪽 팔에 힘이 빠진다고 하더니 결국 팔을 완전히 들지 못하게 되었다. 시술 과정에 문제가 없었기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우리 딸, 선생님이 책임지세요." 회진을 가면 보호자는 분노하셨고, 환자는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고통을 드려 미안합니다." 환자만큼은 아닐지라도 의사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의료 과오'와 '의료 사고'는 동의어가 아니다. '의료 과오'는 의학적 타당성이 결여된 잘못된 치료로 나쁜 결과에 이른 경우다. 진단이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합병증은 '의료 과오'와 구별되어야 한다. '의료 사고'는 의사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치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손상이 발생한 모든 경우를 말한다.

'First, Do no harm'(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전해오는 의사의 사명이다. 그러나 의술은 완벽하지 않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음을 환자도 잘 안다. 그러나 의료 사고를 당했을 때 의사가 뭔가 숨기려 하고 진솔하게 사과하지 않으면 환자는 분노하게 된다.

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완벽함을 요구받는다. 그래서인지 의사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또한 사과에도 인색하다. 사과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고, 의료 분쟁 시 수세에 몰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진솔하게 사과하는 법을 의대에서 배운 적도 없다.

'쏘리웍스(sorry works)'는 더그 워체식이 의료 사고로 형을 잃는 과정에서의 겪은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한 의료분쟁 해결 프로그램이다. 의료 사고 발생 시 먼저 환자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의사의 과오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도 '공감' 혹은 '유감'을 표하는 것이 핵심이다. 철저한 조사 결과에 따라 '진심 어린 사과'를 전달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환자와의 소통과정에서 의사가 한 '유감' '사과' 등의 표현은 법적 책임에 대한 시인으로 보지 않는 '사과법'까지 시행되고 있다.

하버드 등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에서도 '쏘리웍스'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행한 미시간 대학병원의 경우 실제로 의료 소송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최근 의료 분쟁이 증가하는 우리나라에도 '쏘리웍스' 프로그램을 서둘러 도입하면 어떨까?

환자는 다행하게도 6개월 이상 재활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 팔을 잘 치료하는 재활의학과 '명의'를 수소문하고, 재활 치료를 받는 병원을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환자는 요즘도 가끔 진료실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양팔을 높이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들어 화답한다. 그런데 울컥해지는 이유는 뭘까?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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