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대 꿀벌나눔협동조합 이사장 "일자리가 최고 복지"

입력 2019-09-02 18:00:00 수정 2019-09-02 18:01:26

먹고살 일자리 찾아 대구行…숱한 직업 체험하며 우여곡절

서정대 꿀벌일자리나눔협동조합 이사장이 대구 동구
서정대 꿀벌일자리나눔협동조합 이사장이 대구 동구 '들꽃무료급식센터'에서 짜장면을 뽑고 있다. 서 이사장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넘어, 자립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석민 선임기자

서정대(67) 꿀벌일자리나눔협동조합 이사장은 요즘 협동조합 운동에 푹 빠졌다. 중학교 졸업 이후 섬유공장 노동자를 시작으로 차량정비기사, 택시기사, 자영업, 목수 등 숱한 직업을 체험하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 그가 협동조합 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수만 있다면 우리사회는 한 단계 더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누구 못지않은 열정적이고 투쟁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확신에 찬 시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배고프고 아픈 사람에겐 먹을 것을 주고 치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 남에게 의지해 살아갈 순 없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주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지입니다. 일자리를 갖게 되면 소득을 얻어 자립할 수 있고, 또 다시 다른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제몫을 다하게 되는 셈이죠."

서정대 이사장은 지난해 8월 꿀벌일자리나눔협동조합(달구벌협동조합에서 올해 명칭 변경)을 설립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운동가의 삶, '대구지역 노조위원장 구속 1호'

경주출생인 서 이사장은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대구로 와야 했다. 진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10대 섬유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기술을 배워 자동차정비 기사 자격을 획득했다. 덕분에 차량정비기술병으로 군생활을 마쳤지만, 제대 후의 삶은 또 다시 노동현장을 전전하는 처지였다.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서 이사장은 연극인이기도 하다. '대구극장워크숍'으로 연극 활동을 했고, 1982년 극단 '공간'의 이사를 맡았으며, 1984년 극단 '처용'의 창립 멤버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그를 본격적인 사회운동가로 만들었다. 극단 '처용'이 설립된 바로 그해, 서 이사장은 대구 최대의 법인택시회사인 ㅎ택시에 기사로 취업했다. 생계를 위한 취업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위한 이른바 '위장취업'이었다.

격동의 시절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강압적 통치가 서슬 퍼렇던 1984년 사납금 관련 택시노동자의 대투쟁이 권력의 심장 대구에서 벌어졌다. 물론 그 중심에서 서 이사장도 한몫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거쳐, 1988년 노조설립이 확산하면서 서 이사장은 ㅎ택시 초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1대, 4대, 5대 위원장 역임). 한국노총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대구시지부장도 역임했다.

서 이사장은 '과격' '극렬' 운동권에 속했다. 대구 택시노조 최장기 파업(45일)을 주도했고, 대구지역 단위 노조위원장 구속 1호, 광역시도 노조지부장 구속 1호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대구 달서갑 후보로 나섰다가, 선거운동 중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후보등록이 무효가 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서 이사장은 "삭발투쟁을 할 때, 동료 노조원 70여 명이 동참하는 바람에 택시회사가 졸지에 절간(=사찰)으로 변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사회혁신을 위한 새로운 삶, 어떻게?

노동현장 은퇴 후 서 이사장은 의료생활협동조합 운동에 관심을 갖고 2013년 (사)환자권리찾기를 설립했다. 서 이사장 주위에 딸, 사위, 지인 등 의료계 종사자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독거노인, 노숙자 등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관심이 쏠린 것이다.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의료법 규제로 환자를 수송할 수도, 응급처치를 할 수도, 의료관련 교육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환자권리찾기의 활동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어려운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무료급식사업과 장례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서 이사장과 30여 명의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대구 동구 안심연합한의원 지하에서 '들꽃무료급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봄·가을·겨울에는 밥, 짜장면, 빵 등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고, 여름에는 위생문제 때문에 쌀·빵·과일·야채 등이 든 '사랑의 봉투'를 나눠주고 있다. 예산과 물품은 회비와 코스트코·퀸벨호텔 등 협력업체 지원, 기부금(법정기부단체지정)으로 마련하고 있다. 포항지진과 강원도 산불 때는 회원들이 현장 급식 봉사활동을 했다. 가끔 협력단체들과 함께 안심공원 무료 짜장면 배식, 각종 경로행사 등을 진행한다.

"봉사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은 밥과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서 자립하도록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경비업 허가와 환경업 허가 등을 얻었습니다. 기존 업체들이 노인, 노숙자, 장애인의 채용을 꺼리니, 우리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서 이사장은 "솔직히 현실적 장벽이 높아 아직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그러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운동을 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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