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위령비

입력 2019-08-23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가곡 비목(碑木)의 노랫말 2절이다. 화약 연기 사라진 달빛 처연한 전장에 쓸쓸히 남은 비목을 노래하는 것은, 두고 온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며 애틋하게 스러져간 이름모를 병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참혹한 전쟁의 여운과 미려한 자연 풍광이 빚어낸 역설이 모태가 된 가곡 비목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천진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청춘의 호곡성이기도 하다. 경주 안강읍 용운사 경내에 서 있는 '안강전투 전사자 위령비'의 모습도 비목과 다름이 없다. 태극기를 새긴 전투모 형상의 비석갓이 치열한 전투 속에 죽어간 젊은 넋들을 상징하고 있을 뿐, 비석에 새겨 놓은 20여 명의 전사자가 정규군이었는지 학도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0일에 세웠으니 6·25 전사자 위령비로는 가장 빠를지도 모른다. 사각 기둥 위에 철모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것도 특이하거니와 비문에 신라 경순왕과 마의태자가 등장한 것도 특별하다. 위령비 옆면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인 신라의 이두(吏讀) 흔적도 있다고 하니, 문화재적인 가치도 지닌 듯하다.

안강은 인민군 주력부대인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 국군이 북진하는 6·25전쟁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다. 위령비가 있는 용운사 주지 스님은 '내년이면 비를 세운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며 관련 당국과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절이 수상하니 젊은 넋들의 표상이 오히려 더욱 서러울 따름이다.

미증유의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북한의 공산왕조는 아직도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며 남쪽을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다. 남한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 '겁먹은 개'라고 조롱한 데 이어, 이번 광복절 '남북협력 및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서는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대꾸 한마디 못한다. 비목과 위령비조차 피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