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수출규제 시작된 지 한 달여
불매운동 앞장 이 땅의 청년들
고분고분했던 적이 별로 없어
말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자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의 로고타이프는 딱 떨어진다. 명확하고 직관적이다. 슬로건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적절한 두께와 정직한 서체, 젊고 간결한 데다 확장성까지 갖췄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시선을 잡고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잇는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만든 사람은 누굴까? 확인해 보니 서울 사는 디자이너 김용길 씨다. 누가 시켰거나 뭘 바라고 한 건 당연히 아니란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자신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강요가 아니라 참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들의 의사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상징을 기획했다고 한다. 보이는 그대로다. 그리고 아베 신조 총리에겐 '후쿠시마산 복숭아 많이 드시라'는 말도 남겼다. 창의성에 시의성까지 갖춘 순발력 있는 재능기부인 셈이다.
하나 더, 노노재팬 닷컴(nonojapan.com)은 사용자 중심 UI(유저 인터페이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군더더기는 다 빼고 방문자에게 필요한 것만 딱딱 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기능도 갖췄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공개했다. 지난달 중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접속자가 폭주해 한때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운영자 김병규 씨는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에게 위로와 공감을 표시하려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재능과 창의성에 참여 의지가 더해진 결과다.
김용길 씨와 김병규 씨는 모두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다. 이들과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함께하는 청년들에게선 한 가지 분명한 게 느껴진다. 일본에 진다거나 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에 위축되지도 않고 그들을 별스레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위 세대만큼 일본에 대해 한 맺힌 것도 없어 반일 감정도 덜하다. 그러니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혹시 모를 열패감도 있을 리 없다. 어찌 보면 아직 젊어서 그런 거라고, 일본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나라인지 몰라서 그런 거라고, 심지어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이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을 옆 마을 가듯 하는 청년이 수십만 명이다. 일본을 직접 보고 듣는 기회도 예전에 비해 훨씬 많다. 일본이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땅도 넓으며 기초기술마저 앞서 있다는 사실 또한 이들도 잘 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들은 일본에 고분고분 져줄 의사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역력하다. 수적 열세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승부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는 드라마 대사가 있다. 안동에서 촬영한 '미스터 선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대한제국의 관리에게 한 말이다. 시세를 따라야 할 일과 마땅히 해야 할 일, 이 둘을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이미 구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두고 타협하지 않을 때, 믿음이 올바른 방향을 향할 때, 더구나 그 주인공이 청년일 때, 거기서 나오는 힘은 몇 배로 커진다. 그리고 그것에 남다른 재능과 창의성이 더해지면? 이런 건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다.
돌아보면 지난 30년,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일본을 따라잡았다. 소니 워크맨의 추억은 이미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고 차세대 통신의 결정판 5G도 우리가 멀찌감치 앞섰다.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일본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청년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일본 청년들이 SNS(소셜네크워크서비스)를 하고 한국의 청년들이 만든 MMORPG(다중접속역할게임)로 일본 청년들이 게임을 한다. 일본의 아이돌 AKB48이 '귀엽다는 칭찬'에 안달할 때 한국의 아이돌 '블랙핑크'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걸 크러시'를 뿜는다. 연결에 관한 것과 역동성, 창의성이 필요한 건 한국의 청년들이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청년들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에 정략적으로 숟가락 얹지는 말자. 그렇다고 말리지도 말자. 고래로 이 땅의 청년들은 고분고분했던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나 득달같이 달려와 맨 앞에서 싸웠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자. 말 안 듣는 대한민국 청년이 일본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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