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건 직후 현장 벗어난 '유일한 목격자' 진술 믿을 수 없어"
법조계는 초기 수사 부실 지적, 일각에선 강압 수사 의혹도
경북 청도군에서 발생한 '범인 없는 살인사건'(매일신문 9일 인터넷판)과 관련, 초기 부실 수사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유력 용의자를 상대로 자백받아내기에 급급했던 수사기관이 애꿎은 사람을 범인으로 내몰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법조계는 현재 소재가 불분명한 또 다른 동석자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살인 사건 무죄 선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지난 9일 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김상윤)는 함께 술을 마시던 후배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재판에 넘겨진 A(52)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아 '범인 없는 살인사건'이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와 숨진 피해자가 경산시내 한 술집에서 만난 건 지난 1월 20일 오후 9시쯤이다. 이 자리엔 지인 B씨도 함께 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인 이들은 이날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인 이들은 다음 날인 21일 오전 1시쯤 청도 A씨 집으로 향했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은 A씨 집에 도착한 지 12시간 뒤인 오후 1시쯤이다. 5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6급 장애 판정을 받은 A씨에게 피해자가 '다리 병신'이라고 하자 순간적으로 격분해 그를 살해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A씨는 흉기를 휘두른 동종 전과가 3개나 있었고 발견된 흉기도 평소 A씨가 보관해오던 것들이었다.
반면 A씨는 "자고 일어나보니 사람이 죽어 있었다. B씨와 피해자가 다툰 것 외엔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A씨가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일한 목격자'의 수상한 행적…현재도 소재불명
법원은 오히려 사건 직후 현장을 벗어난 '유일한 목격자' B씨의 행적에 주목했다. B씨는 사건이 발생한 뒤 근처 도로에 1시간쯤 누워 있다 119구급차를 타고 범행 현장을 떠났다. 의아한 점은 B씨가 범행도구인 흉기를 품 안에 넣고 집 밖으로 나가 집 앞에 있던 감나무에 꽂아뒀다는 점이다.
법원은 "이 사건 범행 당시는 매우 추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범행을 직접 목격한 사람의 행동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며 "범행도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결과 A씨와 피해자, B씨의 DNA형이 모두 검출됐으므로 피해자를 찌른 사람이 A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은 또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B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를 증인으로 채택한 법원이 15차례나 소환장을 보냈으나 모두 전달되지 않았고, 검찰이 B씨의 주거지와 모친의 주거지까지 수색했을 땐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B씨는 현재도 소재가 불분명하다.
◆초기 부실수사가 논란 자초, 강압수사 의혹도
법조계는 지금이라도 소재불명 상태인 B씨를 찾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초기 수사가 A씨에게 집중되면서 B씨에 대한 수사는 그만큼 미진했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선 A씨를 상대로 자백받아내기에 급급했던 검찰이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무죄로 이끈 오동현 대구지법 국선전담변호사는 "A씨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면 1회차 검찰 조사에선 범행을 일부 자백했으나, 2회 차에는 범행을 부인하는 걸로 나온다"면서 "그는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으나 수사관 마음대로 자백 조서를 꾸몄다는 게 A씨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변호사는 또 "법정에서도 이 점을 부각해 검찰 진술 조서의 진정 성립을 부인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사건 초기 검찰이 A씨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강압적인 수사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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