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소재 분야 산업정책의 평가와 숙제

입력 2019-08-06 18:04:05 수정 2019-08-06 19:15:07

핵심소재 국산화 기치 지난 정부
2010년부터 9년간 1조 투자 추진
대기업 위주 정책 방향 탈피하고
기술력 갖춘 중소기업에 지원을

이정호 변호사
이정호 변호사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분야가 바로 소재산업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의 전방산업 중 하나로만 인식된 소재산업이 원가나 규모는 작더라도 거대한 후방연쇄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각인됐다.

당장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국산 소재의 개발을 지체한 상황을 절감하면서 기초과학에 입각한 소재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거 정부나 기업이 소재산업의 국산화나 기술력 향상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기술로 제조돼 외관상 그럴듯해 보이는 완성품이라 하더라도 부품이나 소재를 충분히 국산화하지 않았다면 우리 기술이라 평가할 수 없다.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제품의 국산화를 평가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예전부터 정부가 부품소재의 국산화에 매진한 것은 제대로 된 국내 기술의 성장을 위한 노력이었다.

비교적 오랜 기간 정책적인 부품소재의 국산화 노력이 있었던 것과 비교해 소재 내지 소재부품의 국산화 시도는 역사가 짧다.

지난 정부는 핵심소재의 국산화를 기치로 걸고 부품소재 세계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목표로 2010년부터 9년간 1조원을 투자해 세계일류소재(WPM'World Premier Materials)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정책 대상이 된 10대 핵심소재는 스마트 강판, 초경량 마그네슘, 나노복합 소재 등 10개 분야에 걸쳐 있지만, 연구비 지원 대상기관은 대기업으로 국한돼 있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시점은 마침 세계일류소재 개발사업의 계획에 따른 성과를 평가받아야 할 시기와 묘하게 맞물려 있다.

궁극적으로 수출규제 소재 품목의 국산화라는 숙제가 생겨났지만, 이러한 소재의 국산화 여부는 곧 과거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의 평가 성적표처럼 됐다.

향후 지속적으로 점검이 필요하고 평가 결과도 다양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WPM 개발사업은 몇몇 소재 분야에서는 국산화율을 높이고 세계 최초의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WPM 개발사업이 시작될 무렵 필자가 접한 어느 LCD 디스플레이 소재 개발 벤처기업은 거액의 기술금융투자를 유치해 국산 신소재 개발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제품의 공급처인 특정 대기업 의존도가 너무 높은 데다 뜻하지 않게 해당 대기업이 양산 중단을 결정해 회사가 도산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아쉬운 건 당시에도 해당 벤처기업의 핵심 기술은 일본의 소재 기술자 1인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점이다. 돌이켜 보면, 정부의 WPM 개발사업 정책에 힘입어 해당 대기업은 새로운 소재의 발굴이나 개발에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이런 관심이 중소기업으로 낙수효과를 보이지 않은 채 대기업의 개발 실적 한 줄만 더해주는 효과에 그친 것이다.

이와 같이 대기업이나 상장기업 위주로 연구기관을 선정하면서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이나 연구소에 대한 지원이 누락됐고, 대기업과 연계된 중소기업의 간접적 개발 지원 방안이 부실했던 것도 반성할 일이다.

마침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카드로 우리나라 소재산업의 개발지원 성과와 실적을 평가할 기회를 제공했다. 과거의 정책 성과를 토대로 기존 산업정책의 공과를 살피고, 더 높은 목표를 가진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는 것이 당면 과제다.

과거 정부에서 시행한 시책이라도 전략과 방향이 옳은 것이었다면 당연히 공을 인정하고 미진한 점은 보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을 담은 2차 WPM 개발사업을 지속해 나가야 하며, 대기업 위주의 정책 지원 방향에서 탈피해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나 기술자를 선정하여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대기업이 호응해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되고 제품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대승적으로 보조해 주는 소재 개발의 상생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소재를 양산할 수 있는 설비나 장비 구축을 지원할 수 있는 실효적인 기술금융혜택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현명한 정책을 바탕으로 현재의 무역 갈등에서 초래된 위기가 소재산업의 새로운 자양분으로 전환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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