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한 대구지방보훈청장
대구에서 두 번째 맞는 8월, 걷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폭염은 '대프리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땀이 흐르는 무더위 속에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맞선 'No Japan'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대구 중심가 일본 의류 매장의 한산한 모습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문득 역사 속 대구의 역할이 떠올랐다.
국채보상운동으로 대표되는 독립 정신의 '대구',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킨 '대구', 228 민주운동으로 나라를 바로 세운 '대구' 등, 한국 근대사에서 대구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호국 보훈의 도시다. 나는 이 중 폭염의 열기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69년 전 8월의 대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해 여름도 유난히 더웠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전선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남쪽을 향하면서 밀려오는 피란민들에 북새통을 이루는 도시를 지켜보면서, 대구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리던 워커 장군은 8월 1일 낙동강에 마지막 방어선 구축을 명령하였고, 7월 19일 대전에 이어 상주, 김천까지 함락한 북한군은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를 부산에서 치르겠다는 김일성의 독전에 대구를 점령하고자 다부동을 중심으로 5개 사단을 집중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 55일간의 혈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구는 "전투는 군인이 하고 전쟁은 국민이 치른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민(民)과 군이 하나 되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총력전을 펼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전투로 부족한 병력은 대구경북의 수많은 젊은이들로 채워졌다. 시시각각 쏟아져 들어오는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양의 혈액은 시민들의 헌혈로 충당됐다. 그리고 풍족하지 않은 식량 사정에도 전쟁을 피해 몰려든 피란민들과 식량을 나눠 결핍과 기아의 고난을 함께 겪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포화가 쏟아지는 전선에서 불과 몇㎞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십만 명의 피란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음에도 치안과 질서는 잘 유지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8월 18일 새벽에는 대구역까지 박격포탄이 떨어졌고, 정부마저 부산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굳건히 지역을 지켜낸 시민들의 용기는 전투 중인 군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기에 충분했다. 대구가 없었더라면 낙동강 방어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오늘날 대한민국도 없었다. 극일(克日)의 기운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이때, 나라 사랑과 호국의 의지가 차고 넘치는 대구의 8월은 더욱 의미가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뜨거운 애국정신과 역경을 이겨냈던 모든 분들의 얼이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8월의 우리는 결코 폭염 속에 매몰되지 말자. 69년 전 여름, 무더위 속에서 용광로보다 더 뜨거웠던 대구인들의 애국심을 기억하자. 이것이 바로 면면히 내려왔고 또 이어져야 할 대구 정신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자.
대구의 8월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뜨겁지만 그 열기는 곱씹을수록 자랑스럽다. 고통스러운 세월을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로 이겨낸 독립투사의 헌신이,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호국 영령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에 꺼지지 않을 불꽃으로 타오르길 소원하며 이분들을 소홀함 없이 기리고 예우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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