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이연(離緣)

입력 2019-07-30 11:11:09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이정호 국악작곡가

나의 대학생 제자가 레슨을 받으러 와서 책상 앞에 앉자마자 대뜸 나의 곡 소아쟁독주곡 '이연(離緣)'이라는 곡에 대해 묻는다. 어떠한 느낌과 영감으로 곡을 썼는지, 과연 이 곡은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그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때 사랑하던 사람이었는지를 숨도 쉬지 않고 물어보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무언가를 기대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이어질 수 없는 인연에 대하여 썼다고 그냥 가볍게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곡은 내가 그 제자와 비슷한 나이였던 대학생 때 썼는데, 그 당시의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남 뒤의 이별에 대해 썼고, 그래서 딱히 언급할 누군가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를 생각하며 곡을 썼다고 하기엔 뭔가 여러 가지로 쑥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그 제자는 스스로의 해석으로 '고백할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이야기'일 것 같다며 자기가 '이연'속의 여자의 입장을 상상하며 '비연(悲緣)'이라는 곡을 써보았다고 하였다. 순간 웃고야 말았다. 근데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곡으로 인해 영감을 얻어서 제자 스스로가 또 하나의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곧 그 곡 악보를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가사가 또 한 번 나를 웃게 만들었다. 가사 속 내용이 손발 오그라드는 민망함이 있어서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직관적이고 진실된 글이 사랑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어서 흐뭇하였다.

사랑은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어떤 시절을 지나며 마음속에 추억으로 간직된 세월이 지나버린 풋풋했던 사랑,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되고 있는 성숙하고 뜨거운 사랑 등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가지는데, 아래 글은 소아쟁독주곡 '이연'에 쓰인 곡 해설이다.

떠날 이(離), 인연 연(緣)을 조합하여 만든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인연에 대해서 노래 한 것인데 그런 안타까운 사랑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연이란 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즉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으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리 다시 되돌려 보려고 해도 시간은 계속 흐르기에, 세상 만물의 이치 속에 인간의 힘은 한없이 미약하기에 안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연은 더 아픈 것이다.

그 아프고 애절한 마음을 아쟁의 구슬픈 선율로 옮겨보았다. 이 이연을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그 슬픈 마음으로 이 곡을 완성하였지만 모순적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직까지도 나의 이연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해석으로 음악과 문화를 이해해보자. 이정호 국악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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