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소련놈에 속지 말고 미국놈 믿지 말라. 되놈은 되나오고 일본놈은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동요가 유행했다. 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민족의 고달픈 처지를 한탄한 노래다. 70여 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이들 강대국에 치이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을 머리맡에 이고 사는 것을 고려하면 상황이 더 나빠졌다.
강대국에 핍박당하면서도 호기(豪氣)는 있었던 모양이다. 강대국 사람을 지칭하면서 비하하는 말을 많이 썼다. 러시아인은 로스케라 불렀다. 러·일 전쟁 때 일본 군인들이 러시아인을 지칭하는 '루스키'를 음역해 '로스케'(露助)라 부르며 러시아 군인들을 조롱했다. 이 말이 한반도에 전파돼 러시아인 비하 표현으로 쓰였다. 중국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되놈, 일본 사람을 비하하는 쪽발이도 마찬가지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인이 북군 병사에 대한 모멸적 칭호로 썼던 양키를 미국 사람을 지칭하며 흔하게 썼다.
구한말, 해방 직후처럼 한반도가 강대국이 맞서는 격랑으로 들어갔다. 러시아는 자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부인하고 한국 조종사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일본은 경제 보복에 이어 독도 영유권을 다시 꺼내 들었다. 한·일 갈등에 미국은 동맹인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며 파병과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청구서를 내밀었다.
이 와중에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한국을 향한 무력시위라며 대남 경고장을 날렸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풀이되는 '남조선 당국자'를 거론하며 "남조선 당국자는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향한 문 대통령 노력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로 돌아왔다.
한국이 네 강대국과 북한의 '동네북'이 된 원인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가 흔들린 탓이다. 한국이 계속 외톨이로 남으면 두고두고 동네북 신세가 되는 것은 물론 나라 안위마저 위태롭다.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동요는 아직 이 땅에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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