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 무지서 시작한 순종어가길, 걷어내야

입력 2019-07-27 06:30:00

대구 달성공원 정문 앞 순종황제 어가길이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국비 35억원 등 총사업비 70억원을 들여 만든 길이지만 찾는 이도, 돌보는 이도 없다. 어가길의 핵심은 달성공원 정문 앞에 세운 망국의 황제 순종의 대형 금빛 동상이다. 이 역시 관심 갖는 이가 별로 없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 어울리지도 않는 풍경이다. 이제라도 걷어내는 것이 옳다.

대구 중구청의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1909년 1월 순종이 대구 부산 마산을 순행한 소위 남순행 중 대구 방문을 기린다며 시작한 것이다. 순종이 대구를 왜 찾았는지 역사적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순종이 대구를 찾은 사실에만 의미를 부여해 구상했다. 하지만 순종의 남순행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제에 순종하는 여론 조성을 위해 강요한 순행이었다. 순행에 이토 히로부미가 동행했던 것이 그 증거다. 당시는 을사늑약과 군대 해산 등으로 극심한 반일 감정과 항일의병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특히 1907년 대구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번진 국채보상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구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될 것을 우려한 일제가 순종을 동원한 부끄러운 순행이었다. 그러니 순종의 남순행은 자랑스러워 해야 할 역사가 아니고 일제에 순응한 치욕의 역사인 셈이다.

어가길 조성 계획이 알려져 '치욕적인 역사를 들춰내고 친일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중구청은 '역사적 비극에 따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다크 투어리즘 현장으로 의미가 있다'며 건설을 강행했다. 오히려 순종황제 동상, 역사가로, 쌈지공원 등을 조성해 관광상품화하겠다는 욕심까지 부렸다. 그 결과물이 지금 애물단지로 전락한 어가길이고 동상이다. 구청이 내세우는 다크 투어리즘과 금빛 대형 동상이란 조합은 어울리지도 않는다.

역사성도 없고 조형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형 금빛 순종 동상은 걷어내는 것이 옳다. 순종은 나라를 빛낸 인물도 아니고 나라를 잃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대구를 찾은 이유도 일제의 침략을 돕기 위해 민심을 다독이는데 있었다. 그런 동상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구 달성공원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것은 대구의 수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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