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경희대 교수

韓=善, 日=惡 규정하면 해결 만무
양국 모두 피해 입을 수밖에 없어
외교전서 완승·완패는 불가능한 일
물밑 교섭 통해 중재위 구성 노력을
외교 경로를 통한 협의, 양국이 직접 지명하는 위원 중심의 중재위원회 구성, 제3국을 앞세운 중재위 구성.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경제협력협정, 이른바 청구권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 절차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18일 자정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것은 세 번째 제3국 중재위 안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제안한 외교 협의, 중재위원 지명 중재위에 이어 마지막 절차까지 우리 정부가 모두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시한 설정은 일방적인 것으로써, 수출규제 조치는 외교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주장이다.
나는 방송에서 여러 차례 중재위 절차에 응하는 게 좋다는 주장을 폈다. '아베 편'이거나 친일파여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이 요구하는 중재위는 위에서 본대로 청구권 협정에 정해진 절차이다. 일본의 제안은 일본 스스로 이번 사안이 청구권 관련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른다. 우리 정부와 일본의 합의 하에 중재위가 구성된다면 쟁점은 청구권 해석에 관한 문제로 좁혀지게 된다. 반도체 소재가 북한으로 유출되었다, 우리 정부의 전략물자 관리가 허술하다, 일본의 국가안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계속 말을 바꾸며 자신들의 수출규제를 합리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모순된 것임을 단박에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중재위 구성을 합의한다 해도 실제 중재에 돌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양국이 지명하는 위원으로 구성하거나 제3국을 앞세워 구성하거나 매 한가지다. 중재위 구성부터 중재할 내용, 결정 방식 등 세부사항 조율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양국의 협상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양국의 외교적 협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양국이 접촉하는 동안은 일본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명분이 없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일본에 밀릴 것이라는 단정도 성급하다. 일본이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통해 국제사회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격다짐이 아닌 이상 국제 분쟁일수록 명분과 논리가 중요하다. 후쿠시마 수산물 관련 분쟁에서 우리가 예상을 뒤엎고 승소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중재로 갈 경우 쟁점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국가 간 합의로 소멸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애국적 고려일 수도 있고, 논리적 결론일 수도 있지만 일본의 최고재판소와 우리 대법원이 다른 결론을 낸 것만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다투고 있으니 해결을 위해 중재 방식을 선택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보편적 인권문제라는 명분도 우리에게 중요하다.
"아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자"거나 "아베 당신 실수한 거야"라는 말에서 후련함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북한식으로 "간악한 쪽바리들" "섬나라 사무라이 족속들"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우리 민족끼리' 살 수 있다면야 걱정할 일이 무엇이랴. 우리는 선, 일본은 악으로 규정한들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애증 관계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에 한일 관계는 너무도 복잡하다.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관계를 헝클어 버리면 양국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고'가 사실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불리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중재를 공개적으로 부탁하는 상황이다. 공식적인 중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외교전에서 완승, 완패는 불가능한 목표이다. 아베가 무릎 꿇을 리도, 우리가 머리를 숙일 수도 없다. 중재위는 양국 모두의 명분을 살리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우리가 중재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간주하고 추가 보복책을 강구 중이다. 이제라도 물밑 교섭을 통해 양국 정부에서 함께 중재위 구성 방안을 발표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더 좋은 전략이 있다면 백면서생의 이런 제안은 무시해도 좋다. 너는 누구 편이냐만을 묻는 것은 국가의 전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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