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마지막글 '애도' 댓글 이어져

입력 2019-07-16 17:50:06 수정 2019-07-16 18:22:19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마지막글
정두언 전 의원 페이스북 마지막글 '애도' 댓글 이어져. 페이스북 캡처

정두언 전 국회의원의 사망 소식이 16일 오후 알려진 가운데, 정두언 전 의원의 페이스북에 네티즌들의 애도의 뜻이 모이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2월 10일 마지막 게시물을 올렸다.

배철현 교수의 페이스북에 쓴 화가 반 고흐 작 '자화상' 사진 및 '안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공유한 게시물이다.

이 글에는 정두언 전 의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애도 댓글이 달리고 있다.

'인하기'라는 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9.2.9. "안하기"

몇 년전부터, 내 삶의 원칙은 '안하기'다. 안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도 모르게 하는 생각, 말, 행동을 제3자가 되어 관찰할 수 있어야한다. '안하기'가 '하기'보다 힘들다. '하기'는 자동적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식사하기, 생각나는 대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쥐고 페북보기, 홈쇼핑보고 나도 모르게 주문하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좋다고 따라 하기. 현대인의 삶의 대부분은 '하기'다. 그 하기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습관적이다. 그리고 자동적이다.

안하기는 의도적이며 의식적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위해서는 늦게 잠자리에 들지 않기, 요가수련을 위해서 불필요한 행동이나 말 않기. 내가 성취하고 싶은 삶을 위해서는 과거의 내가 원하는 삶의 스타일을 바꾸거나 정지하기. 안하기는 분명 하기보다 힘들다. 그래서노자는 <도덕경> 3장 말미에서 위무위 칙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라고 말했는가 보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순환이나 사시사철의 변화와 같이 정교한 원칙의 표현이다. 안하기를 할 때, 내가 장악하지 못할 것이 없다.

지구는 스스로 하루에 정확히 한번 스스로 돌고, 일 년에 한번 태양주위를 돌며, 태양계는 거대한 은하수의 일부이며, 내가 속한 은하수는 블랙홀 주위를 2억 광년에 걸쳐 한번 돌 것이다. 만일 지구가 자전을 12시간만에 하거나 이틀에 걸쳐한다면, 지구는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것도 안하는 지구는 정교한 원칙에 따라, 자신의 길을 묵묵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고 있다. 그건 상태가 '자연自然'이다. 지구도 50억년 후엔 힘이 없어 멈출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지구가 오늘 자전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길을 오랫동안 구축하고, 그 길 선상에 있어야한다. 이것이 자연이다.

무위無爲는 정교한 인위人爲다. 무위는 오랜 연습과 훈련, 시행착오와 수정, 혹독한 자기점검과 자기변화를 거쳐 도달하게 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세렌디피티는 자신의 만의 보물을 찾아 나선 자가에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에겐 그런 행운이 찾아 올 리가 없다.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 할지라고. 그(녀)의 그릇이 마련되지 않아, 금방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불행이다.

창조는 무위의 실천이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끌려간 한 유대인이 묵상 중에 우주창조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그것이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있다. 그 무명의 히브리작가는 '창조'라는 단어를 '바라'bara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유사한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아사' 혹은 '야짜르'는 각각 '만들다' 혹은 '형성하다'이다. 이 두 단어는 이미 있는 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창작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바라'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덜어내다; 군더더기를 떼어내다'이다. '처음에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다'라는 성서의 첫 구절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이 등장하기 전에, 한 존재가 무질서에서 질서를 잡기 위해,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냈다'라는 의미다. 창조는 '안하기'다.

유대인들이 우주창조이야기를 '안하기'로 시작했다면, 신에 대한 노래인 <시편>도 마찬가지로 안하기를 시작한다. <시편> 1편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은 사람은 매우 행복합니다.
그는 범죄자들과 나쁜 일을 도모하는 일에 동참하여 걷지walk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죄인들이 가는 길에 서 있지stand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남을 중상모략中傷謀略하는 자리에 앉아 있지sit 않는 사람입니다."

<시편>을 시작하는 첫 히브리 단어 '아스레이'ashrei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흔히 '복있다; 행복하다'라고 번역하지만, 아직도 이 단어의 어원은 오리무중이다. 이 단어는 다음에 따라오는 명사인 '사람' 앞에 위치하여 소위 연계-복사형으로 강세의미가 있어 "매우 복되다" 혹은 "매우 행복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경전인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산상수훈의 시작은 '복 있는 사람'도 이 단어와 관련된 아람어였을 것이다.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어떤 사람을 행복하다고 정의했는가?

시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족보행'과 관련된 세 단어를 연속하여 안하기를 표현하였다. 첫 단어는 '걷다; 행동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할락'הָלַךְ을 사용하였다. 행복한 사람은 공동체를 음해하는 일을 도모하는 일에 참여하여, 그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범죄자들과 어울려 다니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단어는 '서있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마드'עָמָד를 사용하였다. 행복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이 하는 삶의 스타일을 따라 그 안에 서 있지 않은 사람이다. 세 번째 단어는 '앉다; 안주安住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야샤브'יָשָׁב를 사용하였다. '야샤브'는 자신의 몸에 베어,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내는 수동적인 삶의 모습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을 중상모략하고 시기하는 자리에 앉아 남을 헐뜯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 내가 가야할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 어울리지 말아야할 사람과 함께 서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자리에 안주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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