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일본 맥주의 퇴장

입력 2019-07-13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20여 년 전만 해도 주당들은 한국 맥주를 마시면서 '말 오줌 같다'고 투덜댔다. 물을 많이 섞은 듯 싱겁고 밍밍한 맛이 난다는 불평이었다. '말 오줌'은 영어 'horse piss'에서 나왔는데, 맛없는 싸구려 맥주를 뜻하는 속어다.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 말 오줌 맛이 이럴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주당들은 한국 맥주를 '폭탄주 전용'이라고들 한다. 미국 유학생들이 폭탄주를 마시면 멀리 있는 한국 상점을 찾아 비싼 한국 맥주를 산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미국 맥주로 폭탄주를 만들면 강한 맥주 맛 때문에 폭탄주 본래의 맛이 구현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아마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익숙하고 정겨운 맛'을 찾으려는 욕구 때문에 나온 얘기일 것이다. 어쨌든 주당들은 지금도 폭탄주를 제조할 때는 한국 맥주를 쓰지, 수입 맥주는 절대 사절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한국 요리는 맛있지만,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했고, 일부 언론은 2015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맥주는 정말 맛없다. 맥주는 확실히 우리 것이 더 맛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한국 맥주는 이래저래 혹평을 받고 있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TV·신문 등에서 진행하는 테스트에는 한국 맥주는 외국 맥주에 비해 맛과 향, 색, 목 넘김에서 그리 손색이 없다. 한국 맥주 회사들은 맛 못지않게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 때문에 한국 맥주가 저평가돼 있다고 해명한다.

이런 소비 패턴 때문인지 편의점·슈퍼마켓에서는 지난해부터 수입 맥주 판매가 한국 맥주를 앞질렀다. 수입 맥주 중 아사히 맥주가 부동의 1위를, 기린, 삿포로는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일본 맥주가 강세다. 일본 맥주의 인기는 한국 맥주와 맛은 비슷하지만, 좀 더 농도가 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베 정부의 수입 규제에 맞서 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 일본 맥주를 팔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매출도 소폭 줄었다. 맥주 불매로 '반일'이 될까 의심스럽긴 하지만, 대세가 그렇다면 안 마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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