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대구 유명 정신과 의사 '성폭행' 호소에도 검·경 '무혐의'… "그루밍 범죄 특수성 고려해야"

입력 2019-07-12 17:01:27

여성계 "환자와 의사라는 특수한 관계 고려해야" 지적

대구고법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고법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 한 유명 정신과 의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물론 법원까지 잇따라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면서 여성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법조계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과 피해자가 '의사와 환자'라는 특수한 관계인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구고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이재희)는 대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A씨에게서 성폭행 피해를 호소했던 B씨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고 10일 밝혔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불복한 고소인이 법원에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를 말한다.

앞서 A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B씨는 A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지난 2017년 A씨를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혐의없음' 처분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없이 상급자 지위를 이용해 성관계를 맺는 경우에 적용된다. 하지만 검찰은 "둘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을 고려했을 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라고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A씨에게서 성폭행 피해를 호소한 여성 환자가 B씨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환자 C씨도 지난 5월 경찰에 피해를 호소했지만 최근 경찰은 불기소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A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 법원까지 모두 사실상 '혐의 없음' 처분을 반복하자 여성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서 수사기관이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구 여성계를 중심으로 A씨로 인한 피해자가 더 많이 있지만 잇따르는 '혐의없음' 처분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대구지검 소속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 중인 예현주 변호사는 "현행법상 피해자가 성인 여성일 경우 가해자의 위력이나 위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환자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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