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시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에 가면 '과거로 가는 길'이 열린다. 길게는 1천 년 이상 된 골동품부터 현대 생활용품까지,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꽃병으로만 보이는 화병이 수천만의 가치를 갖고 있고, 아무리 살펴도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 고미술품 한 점에 수만백원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보면 그저 눈이 휘둥그레진다. 50여 년 고미술과 함께해온 대호고미술경매 박순호(78) 대표는 "해당 시대의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골동품"이라면서 "건전한 거래를 통해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록이 없어 어려운,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고미술 컬렉션
전시장 안을 둘러보면 신비하게까지 느껴지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마치 교과서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다. 수백 년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고가구들 위로 언제, 어떻게 쓰였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물건들이 들여 있다. 도자기, 그림, 병풍, 놋그릇, 작은 종, 삼발이 화로….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박 대표는 "이곳은 어른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추억에 빠질 수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뿌리 깊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과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고미술'(古美術)은 고대의 미술, 서화, 조각, 도자기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이곳은 과거를 재연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때 김 아무개의 조각품, 조선시대를 살던 박 아무개의 밤을 밝혀주던 촛대 등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흔적을 그대로 품은 물건들"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컬렉션 대상이 되는 고미술품은 그 영역이 넓고 대상물도 다양하다고 했다. "고미술품에는, 흔히 '골동품'이라 부르는 서화, 도자기, 금속공예품은 물론이고 선사시대 돌칼에서 삼국시대 토기, 조선시대 무덤에 껴묻었던 미니어처 도자기에다 반짇고리, 은장도 등 규방의 여인들이 쓰던 물건들이 다 포함된다. 또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의 소망을 담은 민화, 탁자, 반닫이, 소반 등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가구도 있다. 함지박, 농기구, 등잔대 등 농경시대의 생산과 의식주에 쓰였던 물건들도 있다. 천년이 더 된 물건들이 있는가 하면 불과 몇 십 년 전의 물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고미술품이 현대미술품과 달리 제작자, 제작 연대 등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서화처럼 화제(畵題)에다 연대, 작가 서명, 낙관이 있는 경우도 있고, 불상 불화처럼 복장(腹藏) 유물이나 화기(畵記)에 그러한 기록을 담고 있는 유물도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러한 물건들을 뭉뚱그려 우리는 골동품이라 부르기도 하고 고미술품이라고도 한다. 서양 용어인 앤티크(antique)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 50여 년 고미술 인생
박 대표는 고교 때 취미로 시작한 우표 수집이 계기가 돼 평생 고미술품을 취급하고 있다. 1967년 군 제대 후 본격적인 화폐를 수집하기 시작해 68년 '대구화폐사'를 차렸고, 1970년에는 한국화폐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71년에는 대구백화점서 한국고미술협회 경북지회 주간으로 고미술품 전시·경매를 했다. "우리나라 경매의 시초였다. 당시 경매된 도자기 가운데 두 점이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고미술품을 구매해 전시·경매하는 일을 한다. 예전에는 국내에서 주로 했지만 요즘은 일본을 오가며 수집한다. 요즘도 매달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 50년이 넘었다. 도쿄, 교토 등 골동품거리에서 경매로 구매하는데, 주로 도자기를 비롯해 서화, 화폐, 생활용품 등이다. "옛날에는 눈에 띄는 물건이 많았지만 지금은 허탕 치는 날이 많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방출된 고미술품을 품에 안으면 애국자가 된 양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박 대표는 몇 년 전부터는 뉴욕 크리스티나 런던 소더비 경매에도 참여한다. "우리나라 고미술품을 구매하는데, 주로 도자기 서화, 불상, 엽전 등"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고미술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난다고 했다. "좋은 물건을 보면 안 사고 못 배긴다. 주인이 팔지 않는다고 하면 훔치고 싶을 정도"라는 말로 대신했다.
박 대표는 지금도 고미술품에 대해 연구한다. 진위 감정에 대한 안목을 길르기 위해 고고학, 미술사, 민속학, 생활문화사 등 다방면의 역사적 지식을 공부한다. 현장 견학과 체험도 한다. "학계(아카데미즘)와 업계(시장)를 넘나들며 지식과 체험, 열정을 한 데 녹여 유물에 담겨있는 상징성을 이해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고미술협회 감정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고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이다. 진위여부를 가리기 어려우면 박 대표에게 가져올 정도다.
박 대표는 고미술품은 제작 연대와 희소가치, 역사성, 보존 상태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고 했다. "고미술품은 오래 되어야만 가격이 높거나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150년 된 것이라도 보물급이 있고 천 년이 되었어도 전혀 값이 나가지 않는 물건도 있다. 같은 예로 명품은 만원짜리에도 있을 수 있고, 수천만원짜리라도 명품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다.
박 대표가 고미술품 가운데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도자기다. 도자기 가운데 조선백자를 좋아한다. "가장 아름답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 매력에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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