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입력 2019-06-27 19:59:46 수정 2019-06-27 20:14:35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25일 대구시와 이래AMS 노사, 한국산업은행, KEB하나은행, DGB대구은행,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발표한 미래형 일자리 상생 협약. 협약식은 1시간 만에 끝났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이래AMS의 시작은 1984년 대우그룹과 GM이 합작 설립한 대우자동차부품과 대우HMS다. 1989년 두 회사는 합병해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0년 한국델파이로 이름이 변경됐다.

한국델파이는 2011년 이래CS로 주인이 바뀌었다. 2015년에는 사명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으로 변경했다.

이래오토모티브는 한국GM의 실적 하락과 함께 경영난에 직면했다. 2014~2017년 직원 연봉을 동결했고, 2015년에는 4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그래도 경영난은 계속됐다.

2017년에는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의 공조사업부를 분할해 이래AMS라는 법인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래AMS의 매출은 2017년 4천820억원에서 지난해 4천606억원으로 떨어졌다. 회사 존폐가 위협받던 지난해 11월, 이래AMS는 크라이슬러와 폭스바겐으로부터 1조4천억원 규모의 부품 납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1천억원에 이르는 추가 설비 자금과 경영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이래그룹은 또다시 회사 분할을 시도했다. 이래AMS의 핵심 사업 분야인 구동사업부를 분할한 뒤 지분 매각을 추진한 것. 구동사업부가 생산하는 하프 샤프트(휠을 구동하는 독립 현가장치의 차축)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독자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동사업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껍데기로 전락할 처지였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전에 회사 분할과 구조조정을 겪은 터라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래AMS의 처지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1조원 수주를 한 기업이 설비 투자 비용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벼랑 끝에 몰린 금속노조 이래오토모티브지회 관계자들도 대구시를 찾아가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측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유보하는 내용의 상생 협약도 맺었다.

따지고 보면 놀랄만한 일이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내 산별노조 중에서도 가장 강성으로 통한다. 이래오토모티브지회는 대구 금속노조 산하 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이다.

대구시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은행, 청와대를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 읍소했다. 막상 실사를 한 산업은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3년 연속 적자라 신규 대출이 안 되는데다 이미 부채가 많아 담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기존 담보 대출을 대환을 통해 청산한 뒤 이래AMS와 모회사인 이래CS, 이래CS의 미국법인까지 묶어서 담보 대출을 하는 유례없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자금을 마련한 사측은 '원·하청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신규 일자리 창출, 상생펀드 조성을 약속했다.

대구 미래형 일자리는 암흑 같은 터널을 노·사·정이 손을 잡고 통과한 성과다. 그 길에는 희생을 감수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선 노동자들과 경영 안정화를 위해 땀을 쏟은 사용자, 기업과 일자리 살리기를 위해 땀을 쏟은 대구시, 정부, 금융기관의 의지가 있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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