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알아서 기는 우상화

입력 2019-06-1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스탈린은 키가 작았다. 공식적으로는 168㎝이지만 실제로는 163㎝였다. 이보다 더 작다는 설도 있다. 소련 붕괴 후에도 공산당원으로 남았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60㎝로 봤다. 그리고 왼팔이 오른팔보다 짧았으며 왼손은 오른손보다 눈에 띄게 컸다. 이 때문에 그는 항상 오른손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겼다고 한다.

스탈린은 이런 신체 조건을 있는 그대로 그린 초상화가 여럿을 총살했다. 아마도 작은 키가 큰 콤플렉스였던 듯하다. 드미트리 날반디안(Dmitri A. nalbandian)이란 화가는 이를 감지한 듯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를 잡아 키가 커 보이게 그려 스탈린을 만족시켰다.('모던 타임스Ⅰ' 폴 존슨) 이후 소련의 선전기관들은 알아서 기었다. 각종 영화와 연극에서 스탈린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일화는 구소련의 스탈린 우상화가 그의 지시나 암시는 물론 그의 충복(忠僕)들이 알아서 긴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940년대 '스탈린그라드' '스탈린스크' '스탈리노고르스크' '스탈리노그라드' '스탈리니시' '스탈리나오울' 등 스탈린의 이름을 딴 지명(地名)이 대거 생겨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모두 지역 관리들의 충성 경쟁의 산물이다.

스탈린이 거부한 우상화 시도도 있었다. 모스크바를 '스탈리노다르' 또는 '스탈린다르'(스탈린의 선물이란 뜻)로 바꾸자는 청원이나 역법(曆法)을 바꿔 예수 탄생 연도가 아닌 스탈린의 생일을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스탈린 자신도 낯 간지러웠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보낸 조화를 특수 처리를 거쳐 김대중 도서관에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김정일이 2009년 김 전 대통령 타계 때 보낸 조화도 같은 과정을 거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최고 존엄'의 흔적은 털끝 하나까지 간수하는 북한의 우상화를 빼다 박았다. 김정은에게 알아서 긴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코미디다.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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