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통해 이웃의 삶과 생각을 읽어 보아요~

입력 2019-06-19 11:28:22

지역사회에 훈훈한 소통의 바람 일으키는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
동네 목욕탕에도 책을 들고가는 진풍경 벌어져
타지에서 온 이웃들과 허물없이 친해지는 계기 돼

회원들이 선정한 책을 각자 읽고 함께 만나 이웃간의 삶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회원들이 선정한 책을 각자 읽고 함께 만나 이웃간의 삶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 회원들. 이용석 기자

"독서모임을 통해 알았습니다. 우리네 삶이 서로 다를지라도 책이 우리를 하나로 엮어준다는 걸요. 팍팍한 삶 속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 회원인 선보영(45) 씨는 요즘 동네 목욕탕에도 책을 끼고 들어간다. 그녀가 이토록 책과 가까워진 이유는 바로 독서토론 모임 덕분이다. 2주마다 모이는 독서토론에 참여해 이웃들과 허물없는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을 반드시 읽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은 합천읍의 문화공간인 다온카페에서 격주마다 수요일 오전 11시 발제토론, 일요일 오후 7시 자유토론이 진행된다.

'좀머 씨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 '이방인', '새의 선물', '자기 앞의 생', '변신' 등 지난해 10월부터 독서토론을 시작해온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은 릴리 제임스 주연의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름을 지었다.

12명의 회원이 한 권씩 책을 선정하면 2주마다 모든 회원이 토론할 책을 각자 읽어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알랭 드 보통,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한국에서 사랑받는 외국 작가들의 책을 비롯해 이미 10월까지 선정된 책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무려 2천 페이지가 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어냈다.

이곳은 최근 도시의 작은 책방이나 커피숍에서 열리는 독서모임과는 사뭇 다르다. 처음부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은 아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몇 사람과 오가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다.

평소 책 한 권 읽을 여유도 없이 직장과 집안일로 바쁘게 지내던 주부들은 이런 분위기가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카페 공간을 활짝 열어 독서토론을 하도록 모임을 주선한 주인장 덕분에 카페 단골이던 손님들이 어느새 독서모임 회원이 돼 조금씩 책 읽는 맛을 음미하는 중이다.

정유미 다온카페 대표는 "도시에 나가면 커피숍에 앉아 주부들이 독서토론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커피의 진한 향과 어우러지는 그 풍경이 부러웠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해 보자'고 정기 모임을 결성했다. 이제 그들은 우리 카페에 소중한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결혼 후 10년간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냈던 김향미(45) 씨는 이참에 남편도 끌어들였다. 이들은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 부부 사이를 더욱 친밀하게 만든다. 부부지만 여전히 상대를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독서모임이 장날과 겹칠 때는 합천왕후시장에서 저마다 사들고 온 호떡과 떡볶이, 순대가 테이블에 가득하다. 카페 앞에는 초록빛 마당이, 한쪽 벽면에는 철학과 고전, 역사 등 다양한 책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진지하게 책을 읽고 즐겁게 토론을 하는 이들은 우정과 자유, 사색이 공존하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논술교실을 운영하는 이지원(35) 씨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읽는 것이다. 서울에서 합천으로 온 지 5년 만에 진정으로 지역사회에서 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함께 읽어나가는 친구들을 만들게 됐다. 책과 토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선정한 책을 각자 읽고 함께 만나 이웃간의 삶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회원들이 선정한 책을 각자 읽고 함께 만나 이웃간의 삶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합천 다온라떼 북클럽' 회원들. 이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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