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교사의 의지가 있으면 바뀐다', 동문고와 매천고의 변화

입력 2019-06-17 06:30:00

자투리 시간 활용, 적극적인 진로 교육 등으로 잠든 학교를 깨워
외부 기관 연계, 전문가 초청 등 발로 뛰며 학교에 활기 불어 넣어

교육 환경은 변하고 있다. 기대만큼 빠르진 않지만 그 흐름이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하다.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문·이과의 벽을 넘나들고 창의적 사고와 협력·소통을 강조하는 추세다. 학생 중심의 참여형 수업,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수업 등 수업 방식도 다양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에 굼뜬 학교, 교사가 있는 게 현실이다. 변해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그게 그들의 책무다. 번거롭고, 귀찮다고 외면해선 안된다. 교육 여건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쉽게 내뱉을 순 없다.

아이들은 원해서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다. 아이들이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해주려면 어른들이 먼저 포기하고 체념해선 안된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뛰는 이들이 있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대구 동문고등학교는 연휴를 활용해
대구 동문고등학교는 연휴를 활용해 '고전 읽기 및 토론하기' 등 다양한 몰입과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동문고 제공

◆'연휴도 놓치지 않는다', 동문고의 시간 활용법

연휴를 알차게 활용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연휴가 짧다면 더욱 그렇다. 이것저것 계획만 세우다 시간만 흘려보내기 일쑤다. 그리고는 아쉬워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해 충실하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간 학교가 있어 눈길을 끈다. 대구 동문고등학교 얘기다.

6일은 공휴일인 현충일. 목요일이라 금요일 쉰다면 일요일까지 휴일이 이어지는 셈이었다. 동문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6~8일 '6월 연휴 몰입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고1~3학년 학생 가운데 희망자 170여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고전 읽기 및 토론하기' 과정. 손철성 경북대 윤리교육과 교수를 초빙, 사흘에 걸쳐 하루 4시간씩 12시간 운영했다. 읽기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려는 게 개설 취지. 학생들은 플라톤의 '국가' 등 인문사회과학 고전을 발췌해 읽고, 함께 토론했다.

'도전, 성취 10시간'은 동문고 졸업생 멘토 4명이 참여해 재학생들에게 학습법을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참여 학생들은 미리 '자기 도전 계획서'를 제출하고, 10시간 동안 계획서에 적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도전했다. 대입 전문 상담 교원 14명을 초빙해 진행한 '학부모와 함께하는 진로진학 상담' 과정에선 맞춤형 상담이 진행됐다.

'고전 읽기 및 토론하기' 과정에 참여한 이미진(2학년) 학생은 "인문고전들이 다소 어려웠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잘 이끌어주시고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다른 책들도 읽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상담에 함께한 학부모들도 어렵게 느껴지던 대입 제도에 대해 더 상세히 알게 됐고, 자녀의 정확한 수준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지난달 연휴 때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일요일이라 이튿날은 대체 휴일이었다. 4~6일 동문고는 고1~3학년 학생 가운데 희망자 70여명을 대상으로 '수학 몰입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는 하루 4시간씩 3일간 수학 문제를 함께 풀어보는 과정. 또 3학년 중 희망 학생 36명을 위해 전문가 12명의 지도 아래 '자기소개서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박정곤 동문고 교장은 "연휴 때 푹 쉬는 것도 의미 있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우리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열심히 참여해줘 보람이 있었다"며 "학교 교육 활동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신뢰를 보낼 수 있도록, 학생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구 매천고등학교는 다양한 진로 교육활동을 펼친다.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구성해 협동조합
대구 매천고등학교는 다양한 진로 교육활동을 펼친다.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구성해 협동조합 '농부 장터' 등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매천고 제공

◆'학교에서 사회를 배운다', 매천고의 변신

대구 북구 칠곡지구는 지형과 인프라 등 지역 특성상 독자적인 생활권을 영위하는 곳이다. 이 지역에 자리한 고교는 사립고 2곳과 공립고 5곳 등 모두 7개교. 그 가운데 매천고등학교는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처지는 곳으로 꼽힌다.

그랬던 매천고에 이젠 활기가 돈다. 박홍진 교장이 앞장서 다양한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속속 도입 중이다. 남시일 교감은 "진로 관련 과목은 보통 방과후에 개설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일회성에 그치고, 지속성도 떨어졌다"며 "우리는 정규 교육과정 안에 진로 선택과목을 두고 있다. 그만큼 학생, 교사 모두 진로를 찾는 데 적극적이다"고 했다.

그동안 운영해온 미술교과 중점과정만 해도 내실을 더 다졌다. 올해는 미술 창작, 미술사, 드로잉, 평면 조형, 입체 조형, 매체 미술, 미술 전공 실기의 교과가 정규과정과 소인수 과목으로 개설됐다. 그리고 학생의 성장 과정과 교과목의 특성에 따라 학년별로 배치했다. 설치 미술가인 안효찬 작가, 대구경북 만화인 협동조합의 김정우 이사장 등 전문가가 학생들과 함께한다.

정보 중점과정도 준비해 내년부터 진행한다. 이미 경북대 소프트웨어교육센터와 업무 협약을 맺고 'KNU 멘토와 함께하는 SW메이킹 프로그램'은 운영 중이다. 경북대와 매천고 학생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매천 스마트 스쿨'을 구현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상상제작소도 구축, 운영할 계획이다. 이곳은 3D프린터 등 다양한 공작도구를 갖추고 학생들이 생각한 물건을 실제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 가령 프로그래밍한 소형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고 작동시켜 보는 과정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프로그래밍하거나 시제품을 제작해보면서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력을 키워주려는 것이다.

학교에 없던 매점을 설립,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려고 창립총회도 준비 중이다. 매점 운영으로 얻은 이익은 교육활동 지원과 편의시설 설치 등 학생 복지에 쓸 생각이다. 학생들이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과 실물경제 흐름, 상생과 공생의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하려는 게 협동조합의 운영 목적이다. 매점이 서면 학생들의 불편 사항도 해결된다.

매천고 생활이 3년차에 접어드는 박홍진 교장은 "작년과 올해 역량 있는 교사들이 많이 와서 열심히 움직이는 게 큰 힘이 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만 보였던 터널에서 이제야 살짝 빠져 나오는 느낌이다"며 "학교와 학교에서의 활동에 대해 학생들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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