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숲이 사라졌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 걸음으로 십 분 남짓이면 만날 수 있었던 숲, 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난다고 아이들이 이름 붙인 우리들의 자람터, 이야기 숲이 하루아침에 뻥 뚫린 벌판, 민둥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 숲에 맞닿아 있던 '신난다 숲' '자연의 숲'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여기가 진짜 이야기 숲이에요?"
아이들은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나마 높은 곳에 자리한 바람 숲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라진 숲 터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숲 터 사이, 예전부터 있던 좁다란 길 위에 서서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바라보다 소리 없이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 숲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제부터는 함께할 수 없다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지요? 이야기 숲을 잃어버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에 그림책 '삶'(북극곰)이 찾아왔습니다. 선물처럼 도착한 택배 비닐봉투에서 책을 꺼내 앞표지를 만져 보았습니다. 동그란 보름달 아래 얇게 파여 있는 제목 글자 '삶'과 달을 둘러싼 매끈한 밤하늘 둘레로 무광택의 어둑한 것들이 손끝에 닿았습니다. 풀과 나무, 살아있는 동물들의 눈동자… 이야기 숲에서 마주했던 생명들이 떠올랐지요.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코끼리도 태어날 때는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납니다./ 햇빛을 받으며/ 달빛을 받으며// 모두모두 자라납니다." 시작부터 와 닿는 글. 맞아요, 이야기 숲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모두 작았습니다.
십여 년 전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아이들은 점점 자라났지요. 온갖 생명들도 날마다 모두모두 자라났습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의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글과 어우러지는 그림 가운데 동물들이 저마다 또렷한 눈동자로 나를, 독자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눈동자들이 내게 묻는 것만 같았거든요. 이야기 숲 생명들은 어찌 되었느냐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산다는 게 늘 쉽지는 않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깜깜한 어둠 속을 헤치며 날아가는 작은 새 한 마리, 거기 박힌 한 문장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지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만난 다음 장면. 작은 새는 터널 같은 시간을 빠져나왔습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뒤이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장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연히 라디오에서 테드 창의 책 '숨'(엘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고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지요. 사라진 이야기 숲을 되돌릴 수 없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궁리해야 하는 순간이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그래 어찌 되었냐고요? 이야기 숲에서 쓰러진 나무들을 유치원 마당에 데려왔어요. 뒤늦게 간 까닭에 남아 있는 거라곤 작고 가느다란 나무들뿐이었지만 이것들을 얼기설기 세워 엮었습니다. 모래밭 귀퉁이에 그럴듯한 공간이 생겼지요. 이제 여기에, 아이들과 이야기 숲에서 행복하게 누렸던 추억들 되새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보태며 소중한 마음들 모으려고 해요. 새로운 길 내어 만나게 될 시간들 헤아리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변하는 삶 가운데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어쩌면 '새로운 길'에 다다라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께 그림책 '삶'의 마지막 문장을 전해 드립니다. "그러니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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