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내 가스밸브 장치 블리더, 안전이냐 환경이냐

입력 2019-06-07 18:15:34

철강업에 대한 성장·효율 중심의 인식이 환경·건강으로 변화하면서 부각

포항제철소 고로 위에 4개씩 설치된 블리더. 고로 엔지니어링 전문회사 폴워스(Paul Wurth)사 발표 자료 인용
포항제철소 고로 위에 4개씩 설치된 블리더. 고로 엔지니어링 전문회사 폴워스(Paul Wurth)사 발표 자료 인용

고로(용광로) 내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한 안전밸브(블리더)가 요즘 철강 산업계의 근간을 뒤흔들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되고 있다.

경북과 전남, 충남 등 지자체들은 최근 제철소들이 블리더 개방으로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했다며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사전통지했다. 특히 충남은 30일 당진제철소 조업정지를 확정했다.

이를 두고 철강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자칫 10일 동안 조업을 못하면 국내 철강산업이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휴풍시 프로세스. 포스코 제공
고로 휴풍시 프로세스. 포스코 제공

◆철강업계 심각한 위기 직면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용광로가 포항제철소 4기, 광양제철소 5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3기 등 모두 12기가 운영되고 있다.

철강업계는 조업정지를 막기 위해선 소송전 외에는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애를 태우고 있다. 십수년간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어서 생소한 데다 세계적으로도 관련 기술이 개발돼 있지 않아서다.

현재 기술로는 4, 5일 휴풍(열풍 주입 중단)에 따른 고로 온도유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가령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최소 3개월(최대 6개월) 걸린다고 봤을 때 약 120만t의 제품생산이 줄고 8천여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또 일관제철소 특성상 상(上)공정에서 쇳물을 뽑지 않을 경우 하(下)공정인 철강생산라인도 멈춰 서게 돼 노동자들이 대거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산업 생태계를 봤을 때 철을 사용하는 조선, 자동차, 가전 등 수요산업과 관련 중소업체들도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의 용광로 작업 모습. 매일신문 DB
포항제철소의 용광로 작업 모습. 매일신문 DB

◆"오염물질 배출 미미"…업계 청문절차 예고

철강협회는 블리더 개방에 따라 어떤 오염물질이 얼마만큼 배출하는지에 대한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행정행위가 이뤄진 데 대해서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고로 설비 인허가 기관인 환경부가 10여년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환경 기준준수 미비를 이유로 조업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는 4일 설명자료를 통해 "올해 1월부터 4개월간 포항제철소 인근 지역인 포항시 장흥, 대송, 대도, 3공단, 장량동과 제철소 휴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주시 성건동에 설치된 국가 대기환경측정망의 데이터를 비교·분석한 결과,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주요 오염물질 배출 농도가 용광로의 정상 가동 때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포스코 등 철강회사들은 블리더는 화재나 폭발 등 설비사고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용 밸브이지 오염물질배출설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청문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성장·효율만 치중하던 과거와 달리 환경·건강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경상북도 관계자는 "환경부가 방지시설 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없도록 한 상황에서 휴풍 시 임의로 블리더를 연 것을 불법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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