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이야기] ⑮제일국수공장

입력 2019-06-17 18:00:00

구룡포 해풍국수로 알려진 그곳

이순화 할머니와 아들 하동대 씨가 건조되고 있는 국수를 살펴보고 있다. 매일신문 DB
이순화 할머니와 아들 하동대 씨가 건조되고 있는 국수를 살펴보고 있다. 매일신문 DB

포항 구룡포에 가면 아주 오래된 국수 공장이 하나 있다. 1971년 문을 연 '제일국수공장'이 바로 그곳이다. 당시 구룡포에는 국수 공장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이 집만 남았다. 아직도 밀가루를 소금물로 반죽해 오래된 기계에서 뽑은 면을 대나무 발에 걸어 바닷바람이 부는 건조장에서 말린다. 48년째 국수를 만들어온 이순화(80) 할머니는 "국수는 이처럼 초리~하고 매끄리~하게 빚어야 맛있다"고 말했다.

◆ 구룡포에 하나 남은 국수 공장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제일국수공장 간판은 48세다. 그래서 그런지 공장 곳곳에는 오래된 흔적이 남아있다. 1971년 개업할 당시 구룡포우체국장이 직접 나무에 글씨를 써서 걸어준 간판이 그대로 있다. 국수 무게를 재는 추저울도 그때 장만한 것이고, 반죽한 밀가루를 미는 롤러도 그때 설치한 것이다. 모두 이순화 할머니와 함께해온 것들이다. "처음부터 저 기계와 함께해서 그런지 버리기가 아까워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스물 넷 되는 때에 감포에서 구룡포로 시집온 이 할머니는 살림을 해나가면서 옹기가게를 열었다. 친정어머니는 귀하게 자란 딸이 옹기 장사나 한다는 주위의 쑥덕거림이 싫어 구룡포시장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옹기 장사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국수공장의 벌이가 좋아 보였다. 이유는 또 있었다. "국수공장을 하면 술과 사람을 좋아해 집안 일을 돌보지 않는 영감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면만 빼주면 나머지는 내가 할라캤지." 그것이 제일국수공장의 시작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반죽이며 면발 뽑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술자를 뒀다. 두 딸과 두 아들도 일을 도왔다. 3년 뒤 기술자가 그만둔 후 일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됐다. "내가 밀가루를 반죽하면 남편이 롤러로 면을 뽑고, 아들은 국숫발을 대나무에 끼워 건조장에 내걸었다. 햇볕에 말린 국수를 포장하는 일은 딸이 거들었다"고 회고했다.

1990년 중반쯤 남편이 간경화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국수 만드는 일은 이 할머니 몫이 됐다. 그 사이 딸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아들들도 회사의 중견간부가 됐다.

라면이 나오기 시작하자 국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국수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굶으면 굶는대로, 팔리면 팔리는대로 살았다. 이 할머니는 "구룡포시장 내 여덟 개나 되던 국수공장이 지금은 단 하나, 제일국수공장만이 남았다"고 했다.

건조된 국수를 포장하고 있는 이순화 할머니. 50년 가까이 국수 만드는 일을 해온 이 할머니 손가락은 굵고 삐뚤어져 있다. 박노익 기자 noik@imaeil.com
건조된 국수를 포장하고 있는 이순화 할머니. 50년 가까이 국수 만드는 일을 해온 이 할머니 손가락은 굵고 삐뚤어져 있다. 박노익 기자 noik@imaeil.com

◆밀가루와 소금, 바람, 그리고 정성이 더해진 '해풍국수'

제일국수공장은 반죽-롤러밀기-자연건조-반건조-숙성 등 아직도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재료는 딱 3가지, 물·소금·밀가루뿐이다. 줄을 서서 사가는 유명 국수 공장의 비법치고는 너무 단순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실내에서 열풍 건조로 만들어지는 보통 국수와 달리 오로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볕만으로 말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별명도 '해풍국수'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오로지 국수 만들기에만 정성을 쏟아온 이 할머니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날씨에 따라 소금 농도는 물론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양과 국수 두께까지 달리함으로써 해풍국수의 품질을 지켜오고 있다. 이 할머니는 소금물에 맨손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염도를 정확히 구분해낸다. "덥거나 날이 궂을 때는 소금을 적게 넣고, 바람이 약하거나 추울 때는 소금을 많이 넣는다"면서 "50년을 해왔으니 이제는 손만 담가봐도 안다"고 했다.

롤러로 뺀 국수는 열풍기로 말리는 현대식 공장과 달리 바람에 맡긴다. 맑은 날엔 이틀 꼬박 걸리고, 흐린 날엔 사나흘도 걸린다. 야외 건조장에서 해풍으로 1차 건조시킨 다음 실내로 들여와 15시간 정도 숙성시키고, 다시 바깥에 널어 완전히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졸깃한 면발의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스민 '해풍국수'가 만들어진다. "하늬바람 불 때 만든 국수가 최고 맛있다"고 했다.

이렇게 말린 국수는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이 할머니는 기계를 쓰지 않고 손대중으로 툭툭 잘라도 아주 정확한 길이가 된다. 평생 해온 일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며 되묻는다. 국수를 한움큼 잡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면 정확하다. 50년을 하니 척 보면 무게를 안다고 했다. 반죽, 롤러, 건조, 묶기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을 필요로 해 국수는 잔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50년 가까이 국수 만드는 일을 해온 이 할머니 손가락은 굵고 삐뚤어져 있다.

일반 소면에는 생밀가루 냄새가 붙어 있는데, 이 할머니가 만든 해풍국수는 생밀가루 냄새가 덜 난다. 해풍국수는 면을 삶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전분 찌꺼기가 뜨지 않고, 삶은 면을 실온에 보관해도 엉켜 붙지도 않는다. 쉽게 퍼지지 않고 면이 탱탱하고 다 먹을 때까지 쫄깃하다. 면발은 살아 있는 듯 입안에 착착 감긴다. 반응도 좋아 포항을 비롯해 대구, 울산, 부산 등에서 직접 방문해 사간다. 제일국수공장 맞은편에서 국숫집을 하고 있는 이상교(54) 씨는 "엄마 때부터 쭉 제일국수공장과 거래하고 있다. 쫀득쫀득하고 방부제를 넣지 않아 소화도 잘 된다. 먹어본 사람은 이 국수만 찾는다"고 했다.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제일국수공장은 이제 이 할머니 혼자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던 아들인 하동대(51) 씨가 함께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이 아니면 공장의 명맥이 끊어질 것 같아 가업을 잇기로 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하 씨는 어머니와 같이 일하기엔 힘들다며 씨익 웃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혼자서 일을 다 하셨다. 한마디로 여장부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한시도 쉬지 않는다. 지금도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공장으로 나와 저녁 7시, 8시까지 일한다"고 했다.

이 할머니 역시 "처음에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 아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잘 하고 있다"고 했다. 하 씨는 "50년 전통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을 잘 지켜나갈 것이다. 아들도 원하면 물려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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