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숲은 깨어 있다

입력 2019-05-29 09:45:43 수정 2019-05-29 17:47:19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입하가 지나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숲은 점점 짙어간다. 앞산에서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는 한없이 평화롭다. 나도 모르게 동요를 흥얼거린다.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한다. 밭엔 하얀 감자꽃이 소담스럽다. 봄에 심어 놓은 채소와 고추, 오이, 가지가 열린다.

풀은 뿌리가 점점 깊어간다. 뒷마당에는 예쁜 감꽃이 떨어져 어린 시절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던 향수를 자극한다. 거리엔 붉은 장미와 노란 금계국이 휘날린다. 정원에는 자줏빛 붓꽃과 달개비, 색색의 수국이 피어난다. 물확에는 수련이 피어 오른다. 5월 들녘에는 하얀 찔레꽃과 노란 씀바귀꽃, 토기풀꽃과 소루쟁이 꽃내음이 가득하다.

냇가에 흐르는 물은 맑고 시원하다.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은 청량하다. 한 달 사이에 식물의 어린 잎들이 둥글어지고 줄기는 키가 크다.

이렇듯 자연은 소리 없이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질서를 이어간다. 주변을 맑고 향기롭게 한다. 나무와 풀들은 이웃이 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온전히 자신을 다 바친다. 숲에서는 생명들이 집을 지어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는 사랑이 가득하다.

자연은 덕을 가졌기에 후박하다. 모든 것을 내주고 받아들인다. 어디다 눈을 둬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햇살에 비친 보잘것없는 작은 나뭇가지의 잎이 투명하고 선이 곱다. 거들떠보지 않는 눈 아래에서는 민들레 홀씨들이 모여 지나가는 바람이나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목적지 없이 날아오르며 자신의 생명을 옮긴다.

비 온 뒤 청산은 얼마나 맑고 푸른가? 구름은 높은 산을 넘나들고 햇빛은 찬란하다.

글을 쓰다가 오죽 지팡이를 들고 밭에 나가 풀을 뽑고 연밭을 한 바퀴 산책하고 온다.

망월 누각에 올라 우전차를 우려 법당 뒤 솔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분지족한다.

소리새의 노래 '5월의 편지'를 들으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본다. 바로 정토다. 그윽한 즐거움이 깃드는 곳,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 그곳이 정토다. 정토를 다른 말로 '한없이 맑고 투명한 땅'(無量淸淨土) 또는 '연꽃이 간직된 땅'(蓮華藏世界)이라고 한다. 자기가 사는 삶의 환경을 어디서든지 맑은 정토로 만드는 것은 자기 몫이다.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 속에 타협을 모르고 살아간다. 반면에 자연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균형을 유지한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오염, 파괴시키지 않으면 숲을 이룬다. 자연이 건강할 때는 자연의 은혜를 모른다. 공기와 물이 오염되어 숨쉬기가 힘들고 마실 물이 귀해지고 나서야 건강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자연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지녔기에 인간이 오염시키고 파괴시킨 것을 정화해 낸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 욕심을 다 채우려는 것은 밑 빠진 독을 물로 채우려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마음이 한가할 수 없다. 마음이 한가하지 않으면 지금에 충실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늘 쫓기고 정신없이 살도록 부추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할 때 행복한 현재가 되고 과거, 미래가 된다.

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하다. 내 삶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의 조화로운 밸런스에서 배우고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잘못된 정치, 경제, 사회, 민생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위정자는 국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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