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약자가 최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2

입력 2019-05-21 16:19:12 수정 2019-05-22 15:35:46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1. 낯설지만 머지않은 요지경


작년 정월 마지막 날, 북해도 삿포로에 위치한 3층짜리 낡은 건물에서 불이 났다. 입주민 열여섯 중에서 열한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이 부상당한 대형 사고였는데, 모두가 단돈 3만6천엔을 다달이 내고 10㎡ 남짓한 단칸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홀몸노인들이었다. 갈 곳도, 돌봐 줄 사람도 없는 노인들이 기거하는 이런 시설이 일본 내에 1천200곳 이상인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재해와 사고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요코하마의 '라스텔'(Lastel)은 산 사람은 묵을 수 없는 특이한 호텔이다. 생의 마지막에 머무는 호텔이라고 그런 상호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시신 안치소다. 고령화에 따라 사망자가 늘어나는데 화장장 건립은 어려워서 시신을 임시로 모셔둘 곳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라스텔과 같은 '이타이(遺體)호텔'들이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스무 곳이 넘는 이타이 호텔이 성업 중이란다.

역시 대도시에 확산되어 가는 '직접장'도 특이하다. 일본의 전통 장례가 밤샘과 장엄한 영결식을 중심으로 했다면, 직접장은 모든 의식을 생략한 채 화장(火葬)을 하고 끝내는 장례방식이다. 가족과 친지가 참관하지 않아도 업체에서 화장을 진행한 다음 유골을 택배로 보내준다. 도쿄의 경우 장례의 20~30%가 직접장으로 치러진다.

우리에게는 낯선,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일지 모를 광경이다. 자녀를 키우느라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나머지 자신을 돌볼 수 없는 노년, 그런 노인을 제 살기 바쁘다며 외면하는 다음 세대,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영리업체가 빚어내는 요지경이 비단 일본만의 특이한 현상일까.

2. 영리와 성과에 매몰된 사회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초대 소장 로버트 버틀러(Robert Burtler)가 처음 제안한 개념인 '연령주의'(Ageism)는 연령을 이유로 편견을 갖거나, 부당하게 처우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연구들은 일반의 예상과 달리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30~50대에서 노인에 대한 연령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아마도 전통이 무너지고 성과 위주의 경쟁사회로 급변한 사회적 특성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불어 사는 삶도, 생명의 가치도 뒷전으로 물리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돌진적 성과주의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모두를 경쟁에 허덕이는 처지로 몰았고, 이 경쟁의 아수라장에서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는 이들은 최약자들을 보살피기보다 부담스러운 짐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올 3월에 발표된 서울신문의 설문조사에서 전국 성인남녀 1천 명 가운데 80%가 안락사에 찬성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공임신중절과 안락사 문제는 약자가 최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앞선 세대를 밀어내고 뒤따르는 세대를 떨어뜨리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그렇게 얻어낸 성취가 참으로 자아실현이라 불릴 수 있을지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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