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권위는 낮게, 품격은 높게

입력 2019-05-06 14:18:23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것은?

정답은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그랬다. 뙤약볕 운동장에서 쉽사리 끝나지 않는 훈화 말씀은 종종 아이들을 쓰러지게 했다. 수업하긴 싫었지만 사무치게 교실행을 그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요즘에야 운동장 조회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계절의 왕 5월이 되니 여기저기 행사들이 많기도 하다. 행사에는 어김없이 내빈 소개가 있고 축사와 격려사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진다. 주요 내빈들의 인사에 시간이 소요되다 보면 조회 때 서있던 학생들처럼 관중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행사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축사가 끝나면 내용보다는 길이 여하에 따라 폭풍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면 감사하다. 필자도 행사를 진행하면서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찾아준 내빈들을 챙긴다. 그 와중에 소개 순서나 자리배정으로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빈으로 소개받고 축사를 한 뒤면 바로 자리를 뜨는 데 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정치인의 경우도 허다하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석하지 않고 박수치며 즐기는 내빈들과 비교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행사의 성공여부가 유명 인사들의 참석률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윗분들이 많다고 해서 행사의 격이 올라간다는 생각은 구태의연한 '꼰대'적 발상이다. 주관 단체장의 인사말 정도로 개회식을 꾸미고 내빈의 축사는 과감히 생략하거나 초간단 인사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어선지 최근 들어 의전의 간소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위는 낮게, 품격은 높게'를 슬로건으로 비효율적 의전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동해시도 있다. 내빈 위주의 관행적인 운영은 청중들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적용은 아직 먼 느낌이다. 한국식의 과도한 의전문화는 강철처럼 견고해서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전시회나 공연 팸플릿 또한 주요 인사들의 축사로 앞부분을 차지하기 일쑤다. 주최측의 인맥을 자랑하고 싶은건지. 판에 박힌 축사들을 읽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1인 1페이지 축사 대신 프로그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으로 소중한 지면이 할애되어야 한다.

관행이라서 계속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익숙함에 머무르다 보면 발전하기가 어렵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온 경주 최부자의 고택은 권위의 상징인 솟을 대문이 낮아 오히려 소박하다. 여느 사대부집처럼 높게 솟은 대문이 아니어도 격조와 품격으로 대대손손 존경받아왔다.

형식적 의전의 되물림을 잘라내는 것은 리더의 마인드에 달렸다. 몸에 익은 불필요한 의전의 묵은 각질은 과감히 벗겨내 버리자. 누가 뭐라해도 최고의 vip는 시민들이지 않은가.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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