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마당 자활 여성들, "내 인생 마지막 기회인 자활, 우리도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봐달라"

입력 2019-04-25 17:57:45 수정 2019-04-25 20:25:50

최근 재개발을 위한 철거작업이 진행되면서 100년이 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대구의 '자갈마당'.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지난 2004년 4월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회의실에서 자활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한 자료 입니다.(연합뉴스)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지난 2004년 4월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회의실에서 자활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한 자료 입니다.(연합뉴스)

최근 성매매여성 집결지였던 속칭 자갈마당 철거가 시작되면서 100년의 아픈 상흔은 역사의 뒤안길로 종적을 감췄지만, 홍준연 대구 중구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된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지원 사업을 둔 논란은 여전하다.

당사자인 자활여성들은 홍 의원과 여성단체 간의 대립 상황 속 정작 본인의 목소리는 낼 수 없었다.

자활여성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제발 우리에게도 한 번쯤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단돈 1천원이 없어 이 길로 들어선 여성도

현재 자활사업 지원을 받고 있는 A(34) 씨는 21살 당시 취업을 시켜주겠다던 남자친구의 말에 속아 성매매의 길로 들어섰다. 남자친구는 다방에 선불금을 받고 A씨를 넘겼고, 다방에서 다른 여성과 맞보증을 서도록 해 돈으로 그를 옭아맸다. 업소를 전전하다 결국 자갈마당으로 흘러들어온 A씨는 "8년간 이곳에 있으면서 남은 건 마음의 상처와 병든 몸"이라고 했다.

A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씨는 "중학교만 마치면 집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 산업체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당시 만난 남자친구가 문제였다"며 "다방에 취업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여성들을 유인해 업소에 팔아먹는 짓을 일삼던 남자"라고 했다. A씨는 "그동안 목숨을 끊기 위해 번개탄도 피우고, 목을 매기도 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흐느꼈다.

B(41) 씨도 17세 어린 나이에 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였다.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다방밖에 없었다. 업주의 횡포로 이곳저곳 업소로 팔려 다니다 감금당한 트라우마까지 있는 B씨는 "늘어난 선불금을 갚을 길이 없어 자갈마당에 팔려왔고 9년 가까이 지냈다"고 했다.

C(36) 씨 역시 18살에 첫 성매매에 나섰다. 가난이 이유였다. 당장 보살펴줄 가족이 없고 수중에 단돈 1천원도 없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자갈마당에 들어왔다. 적어도 이곳에선 숙식은 해결됐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C씨는 자갈마당에서 5년을 지냈다.

◆편견의 시선이 비수처럼 꽂혀

이들에게 자갈마당에서의 생활 역시 녹록지는 않았다. 차라리 육체적 구타나 욕설은 참을 수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세뇌와 인격모독에 서서히 길들어져 갔다.

C씨는 " '너희들은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 다른 데 가면 인간취급도 못 받는 것들이다'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며 "직접적인 감금만이 감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업주뿐 아니라 자갈마당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노예 같은 취급을 받았다. 단돈 몇만 원에 손님들은 무시와 구타를 일삼았지만 불법인 일을 하다 보니 참는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 같은 희망은 없었다. 매일매일 참고 버티는 하루만이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최근 홍준연 구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B씨는 "알지도 못하면서, 살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는 게 여느 정치인의 모습"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A씨는 "편견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은 우리가 뭘 해도 아깝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청년실업자의 경우 젊고 건강하지만 취업지원비도 지원하기도 하는데, 왜 우리에겐 '넌 안돼'라고만 하냐"고 되물었다. 어두운 곳에만 있다가 세상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좀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C씨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걸어 다니는 대기업', '사치에 명품만 밝히는 X'라고 욕하는 사람들의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고 했다.

이들은 자갈마당이 사라지면서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자활지원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가고 있다.

B씨와 C씨는 "이제는 정말 다르게 살고 싶다. 그 마음을 믿어줬으면 한다"며 "이런 우리의 목소리가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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