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 미술평론가

어려서 우리는 모두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 반듯한 글씨가 알아보기 좋고 바른 몸가짐도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요즘 글쓰기는 자판을 치는 행위로 대신해 메모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손으로 쓴 편지가 화제가 될 정도이니 이런 시대라면 유구한 전통의 우리 '서예'는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서예 작품의 감상은 재료와 기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 지필묵(紙筆墨)이 가진 특유의 물성과 서법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세대들이 운필(붓의 움직임)의 묘나 글자 자획의 구성에서 비롯되는 조화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예 작품의 훌륭한 감상자가 되는 길은 바로 직접 써보는 공부를 하는 것인데 시대 상황이 너무 급속히 바뀌고 있다.
마침 수성아트피아에서 소헌 김만호선생을 조명하는 전시를 열어 현대 서예계에서 드물게 일가를 이룬 대가의 작품을 직접 만날 기회를 마련했다. 선생은 1960년대 국전을 통해 동시대 서도인으로서 해서의 명가로 불렸다. 가장 바르면서 거기에 멋과 아름다움이 깃든 고상한 글씨체로 많은 이들을 감동케 했는데 선생의 서체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구체적인 생활언어로 표현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힘차게 우렁우렁 굵은 획으로 써나간 큼지막한 글자 앞에서 느끼는 웅혼함, 넘실거리듯 이어지는 행서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기운 등을 느낀다.
바른 마음에서 바른 글씨가 된다는 철학으로 서도에 정진한 선생의 가르침은 서예에서 격조를 강조할 때 결코 기예에 의한 조형미만은 아니며 당연히 인격과 높은 정신세계를 의미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서예는 문자를 바탕으로 하므로 글 뜻의 해석 폭도 넓고 글제로 선택한 시문의 내용에까지 이르면 자연 심오함으로 확장된다.
소헌선생은 1908년 경북 의성에서 나시고 상주에서 자란 분이다. 이미 소년기에 글씨의 신동으로 유명했고 성년이 되어서는 명사로 각지를 순례했다. 생계에 책임을 떠안고 서도에 집중하려고 한의학을 함께 공부해 인술을 펴는 한의사를 겸업했다. 6.25가 나자 대구로 와서 상주한의원을 개원한 뒤 서예를 연구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자택 2층에 봉강서실을 열고 평생 무료지도를 했다. 서예를 대중화하고 심화 보급하는 데 힘쓴 덕택에 선생의 서숙은 오늘날 서예의 명가로서 뛰어난 서가들의 산실로 발전했다. 근대이래 드물게 독자적인 서체로 일가를 이룬 선생은 대구의 지역 서단은 물론 한국 현대 서예계에 큰 위업을 남긴 대가로 한국 현대 서예계의 가장 대표적인 한 분으로 평가받는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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